절실한 경제 위기의식
	2003-12-19
절실한 경제 위기의식 관료출신의 안이한 대응에 … 클린턴의 용단 배우길 꼭 1년 전인 작년 12월 19일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필자의 기대는 컸다. 개혁과 통합의 지도자로서 정치개혁을 통해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시장개혁을 통해 다같이 더 잘사는 나라의 기초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희망을 주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지난 1년을 겪으면서 이제 우리 국민들은 청와대 경내에 이는 작은 바람소리에도 괴로워하는 심정이 되었다. 우리는 과연 노 대통령이 국정 시스템을 총괄하는 최고책임자인지, 아니면 아직도 시스템 밖에서 대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재야 정치인인지 헷갈릴 때가 너무나 많다. 서민들은 이념적 갈등보다는 당장 눈앞에 펼쳐진 천정부지의 집값과 사교육비, 청년실업, 늘어가는 가계빚 등의 민생고로 고통받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극심해진 소득격차는 참여정부 들어와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인식은 ‘경제는 시간이 가면 좋아질 것이다’라고 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 대통령은 경제 부문에서는 ‘시간 회복론’이라는 안이한 인식으로 이른바 관료 위주의 안정형 인사라고 불리는 대리인 체제로 국정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이들 관료 중심의 경제운용 체제는 부동산가격 폭등 대란과 카드사 문제,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미증유의 경제불안을 야기시켜 결과적으로 성장잠재력은 물론 경제안정까지도 위협받는 국정불안을 증폭시켰다. 관료 출신들은 대증(對症) 요법에 의한 위기관리와 단기대응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으나, 개혁 주체로서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개혁이 실패한 것도 청와대가 정치권과 유착된 관료에 의해 완전 포위되어 개혁 대상인 관치(官治)가 도리어 기승을 부린 탓이 매우 크다. 인수위 시절을 포함하여 노무현 정부의 지난 1년간 악화된 경제문제들을 돌이켜 보면 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와 소위 ‘덮고, 미루고, 섞고’의 ‘3고’식 관치가 문제를 확대시킨 점이 많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부처 수장에 비관료 출신의 개혁적 민간전문가들을 전면에 내세웠더라면 전임 정부가 물려준 부동산문제나 부실카드사 문제와 같은 부정적 유산들은 깨끗이 정리하고 새 출발하여 문제를 훨씬 조기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료 출신 수장들은 어제의 오른팔과 왼팔들을 자르고 문제를 청산하면서 재출발하기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연말을 앞두고 소폭의 개각과 내년 총선 이후 중폭의 개각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소폭이든 중폭이든 그 폭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늘날의 한국 경제의 기본 흐름에 대한 대통령의 위기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대통령이 총선에 대한 마음을 비우고 경제 살리기에 최우선의 국정 원칙을 세우고 정도(正道)를 걷는다면 국민들이 반드시 힘을 실어줄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국정의 최우선 과제를 성장잠재력 확충에 두되, 이번 개각에선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구조개혁을 통해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개혁적 인사들로 반드시 경제팀을 교체해야 한다. 지금 노 대통령에게는 위기를 인식하고 ‘아칸소 사단’들을 내치면서까지 집권 1년 만에 인적 쇄신을 단행했던 클린턴 대통령의 지혜와 용기가 요구되고 있다. 권영준 (경실련 정책위의장 / 경희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3. 12. 1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