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장기불황' 전철 밟나
	2003-12-11
'日 장기불황' 전철 밟나 올해 실질소비가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일 것이 확실해지는 등 소비활동이 극도로 침체돼 있다. 이 같은 소비침체는 오일쇼크와 외환위기 같은 예전의 경제위기 때와 비교될 정도로 심각하다. 일단 소비침체는 경기순환 측면에서 내년도 경기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하지만 경제구조적인 관점에서 과거 일본경제와 같은 장기불황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일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가 몰락한 것은 미래소득을 담보로 해 미리 당겨 썼던 차입소비가 지금에 와서 화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이후 신용카드 이용과 가계대출이 크게 늘면서 최근 차입상환이 가계소득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가 낮기는 하지만 원금상환 부담 능력이 소득에 비해 높아 소비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원금상환 부담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를 본다면 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에 육박하고 있어 상환능력이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가계 연체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금융기관의 대출조건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져 가계의 소비활동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물론 예상보다 저조한 경기회복도 소비침체의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올 초만 하더라도 정부당국이 5.5% 내지 6% 경제성장을 예측했지만, 최근 들어 3% 경제성장률 도달이 어렵다고 할 만큼 경기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일자리 구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지고 소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소득 창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해 볼 때 최근의 소비몰락은 차입소비 과다의 부작용에서 발생한 보다 구조적인 문제여서 내년 경제회복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소비심리가 살아나야만 경기회복이 견실하게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수출에 의해 경기가 되살아난다고 할지라도 적극적 소비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계는 ‘선부채상환·후소비지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공장의 해외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소비침체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는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고용증대를 수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으로의 공장 이전은 국내기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의 공통된 글로벌 전략이어서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중심의 국내 경제구조는 중국으로의 공장 이전으로 인해 기업공동화뿐만 아니라 고용공동화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이럴 경우 고용공동화로 근로자의 임금소득 창출 기회가 줄어들어 구조적으로 근로자의 소비구매력이 약화될 것이다. 물론 이처럼 극도로 외축된 소비활동 때문에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경제불황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고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 장기불황 발생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금융부실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지속적인 소비활동의 침체에 있었던 것임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최근의 소비격감을 장기적으로 방치해 국내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금융위기가 재연된다면 과거 일본경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비침체의 장기화가 경기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뿐 아니라 유효수요의 부족을 초래할 가능성은 높다. 따라서 소비활동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계 신용카드 부실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보다 근본적으로 제조업 중심의 고용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는 고용 재조정 방안을 정책적 차원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정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임준환 (서강대 경제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2. 1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