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게임 규칙' 지켜라
	2003-12-09
정치 '게임 규칙' 지켜라 지난주 말 특검법이 공포되면서 특검이 구체적인 시행 단계에 들어갔다. 대선자금 논란과 측근비리 문제는 이제 검찰 수사와 특검에 맡기고, 각 정당은 계류 중인 법안과 민생정책 입안에 진력해야 한다는 여론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이번 특검법을 못마땅해하는 정치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시대의 잘못된 정치관행을 혁파하고 새로운 정치풍토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검법 제정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대선자금 비리 물타기나 검찰 고유권한 침해 논란을 정치권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 현역 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악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검찰 수사에 자진 응하겠다는 민주당 이훈평 의원의 태도는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또 다시 ‘방탄국회’가 소집된다면 특검의 취지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정쟁에서 벗어나 민생현안에 주력해야 하겠지만, 내년 총선 일정으로 이어지는 정국의 소용돌이는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선거구 문제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선거 1년 전 확정하도록 되어 있는 선거구 획정과 관련법들이 아직도 가닥이 잡히지 않은 상태이다. 선거구 관련법은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게임의 규칙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규칙을 만들려고 밀고 당기기를 계속할 것이며, 그동안 외쳐왔던 정치개혁 구호를 무색하게 하는 행태도 예상된다. 제1당인 한나라당은 최근 자신들이 주도한 특검법이 관철된 것을 두고 환호하지만, 당에 대한 지지도는 20% 내외로 추락해 있다. 더구나 특검법과 무관하게 대선자금 비리에 대한 한나라당의 책임 가능성이 여전히 가장 큰 상태이다. 무엇보다 권력형 비리 청산을 위해 특검법을 주도한 만큼 자신들의 비리에 대한 조사와 처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론을 선점하면서 정계개편의 구체적인 계기를 만들었던 ‘정치적 여당’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당이 새로운 정치라는 구호에 어울리지 않은 행보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지지층을 이끌어내기보다는 기존 민주당 지지세력을 대체해 차지하겠다는 부정의 정치전략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새로운 인사 영입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세불리기 시도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치개혁과 지역통합이라는 자신들의 목표가 왜 명실상부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가를 자성해 볼 일이다. 지난 대선에서 주도세력이 적게 남아 있는 민주당은 최근 대선자금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워 보인다. 더구나 최근 지도부 재편 과정을 거치면서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는 가운데 일부 조사에서는 제1의 지지율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도부 재편을 제외하고는 분열된 민주당을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당과 더불어 분열의 한계에 따른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당의 분열 속에서 생존 전략에 급급했던 상황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새로운 호응을 얻어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직 주요 정당 모두 위기 속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하겠다. 새로운 지지를 이끌어 내기보다는 상대방 죽이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결국 생산적 경쟁이 아니라 상대방 죽이기에 의존하는 부정의 정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노당 등이 대안세력임을 자임하고 있지만, 대중적 정치세력으로서는 아직 미약한 상태이다. 이런 정치환경에서 특검 출범을 전후해 대선자금 비리와 권력 측근 비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정치적 쟁점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는 이 과정이 오히려 정치 발전의 계기로 활용될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검찰의 대선자금 비리 수사와 특검 활동이 상호 경쟁적인 효과를 발휘하면서, 정치권에만 유독 관대했던 법치주의 원칙이 이번에는 제대로 구현되길 기대한다. 김만홍 (가톨릭대 정치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2. 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