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정책감사' 제대로 밝혀라
	2003-12-09
'카드 정책감사' 제대로 밝혀라 최근 회원수 기준 국내 최대 카드사인 LG카드가 25조원의 부채에다 실질적 연체율이 33%를 넘으면서 현금유동성이 극도로 악화돼 부도 위기를 맞았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중재에 따른 채권단의 단기 유동성 지원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근본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금융시장 불안의 뇌관으로 자리하고 있는 카드사 문제와 관련된 정책과 감독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감사원이 금감위와 금감원에 대해 정책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오늘의 카드사 문제의 배후에 감독 실패가 없다고 주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감사원이 금융감독 당국에 대한 정책감사 의지천명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카드사 문제의 발단이 됐던 김대중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와 청와대의 역할은 덮인 채 금감위와 금감원만 속죄양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는 1999년부터 소비진작 차원에서 신용카드와 관련한 소득공제한도 확대 및 현금서비스 한도(70만원) 폐지와 카드 영수증 복권제 등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했을 뿐 아니라 카드사 업무 중에 배보다 배꼽이 크게 되는 부대업무비율 50% 미만 제한 폐지 등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신용카드사들은 길거리 모집 같은 무분별한 카드발급, 현금대출 위주의 영업방식 등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물론 정부는 카드사 자본의 적정성, 자산의 건전성, 유동성, 경영건전성에 대해 경영개선을 권고.요구.명령할 수 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업무 정지 또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카드사가 여신전문 금융업의 하나로 국민으로부터의 직접적 수신기능이 없고 그에 따라 예금자 보호가 필요없다는 이유로 감독과 규제를 소홀히 했다. 그 결과 2001년 6월 말 기준으로 평균 가계 빚이 2천만원을 넘어서는 적신호가 켜지자 금감위가 신용카드사의 부대업무 취급비율 50% 이내를 제한하고 가두 모집을 금지하고자 했으나 당시 규제개혁위원회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전업카드사의 무분별한 외형 확장을 막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소비진작을 통한 경기부양의 목적으로 신용카드업을 양성한다는 정책목표가 결국 재벌들의 무분별한 외형경쟁과 맞물려 건실하던 카드산업이 부실화하면서 지금과 같은 금융 불안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여기다 LG카드 부실의 근본원인을 제공한 최고경영자나,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매각하게 된 현대투신증권의 최고경영자 모두가 전문 금융인 출신이 아닌, 종합무역상사나 건설사 사장 출신이라는 배경도 부실금융 경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문성과 도덕성이 무시된 채, 그저 지배주주에 의해 인정받는 가신이면 아무나 금융회사의 CEO가 될 수 있는 후진적 풍토 때문에 리스크 관리 없는'막가파식 외형경영'이 가능했고 이는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카드사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자 2002년에 들어 정부가 감독대책을 들고 나왔지만 이 역시 신뢰받지 못하는 땜질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신용불량자 증가와 신용카드 건전성 악화 추세를 꺾지는 못했다. 결국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카드채 대란이라는 악성 유동성 위기에 처하게 되자 올 4월 신용카드사의 카드채 만기 연장과 더불어 5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이때 정부는 유동성 지원은 "이번이 마지막이고 시장자율에 의한 구조조정만 남았다"고 일갈했으나, 이 또한 11월의 LG카드사의 유동성 지원으로 허구에 그치고 말았다. 신뢰 없는 정부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제는 정말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며, 책임전임자의 실책을 밝히기를 꺼리는 관료 특유의 집단이기주의를 부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국민의 뼛골까지 시리게 한 카드 문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안이한 문제인식과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한 당국자들의 정책 실패에 대한 일벌백계와 같은 근본적인 문책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사실을 감사원은 알아야 한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3. 12. 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