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가장 중요한데…"
	2003-12-09
"경제가 가장 중요한데…" 1992년 미국 대선은 처음부터 클린턴 후보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 전 해에 1차 이라크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재임 중인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대단했다. 이 대세를 뒤집고 클린턴 후보가 이기게 된 까닭은, 부시 대통령이 정치안보를 우선한 나머지 미국의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인 것에 착안하여 클린턴 진영이 “It's the economy, stupid”(이 얼치기 친구야,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을 아직도 몰라?)라는 선거구호를 만들어 경제의 중요성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요사이 우리 국내 정치권을 보면 당시 부시 대통령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대선자금 수사, 측근비리 특검 등 온갖 방법으로 정쟁에만 열중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경제의 현황이다. 얼마 전 정부는 우리 경제가 3분기에 바닥을 쳤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경제에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악재가 있다. 시설투자는 3분기에도 마이너스였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전년 동기대비 마이너스 20%였다. 과다한 가계대출과 카드빚으로 소비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이에 더해 10월의 실업률은 3.3%로 2년째 가장 높았고, 특히 청년층의 실업률은 그것의 거의 3배 수준에 이르렀다. 더욱이 내년 경제전망도 아직까지는 그리 밝지 않다. 내년 성장률이 5%가 될 것으로 예측하는 기관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관들은 4%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 필자는 지난달 본란을 통해 참여정부의 정책수립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 경제팀의 개편을 권고한 바 있다. 오늘은 추가로 두 가지를 더 권고한다. 첫째, 우리경제가 활기를 되찾으려면 시설투자 확대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또 이를 위해서는 현 내각을 경제내각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내각이란 청와대 비서실까지 포함한 고위정책 입안팀에 경제를 잘해보겠다는 사람을 되도록 많이 포함시키자는 말이다. 둘째, 대선자금 수사와 측근비리 특검으로 악화된 정국을 빨리 끝내야 한다. 비리특검에 대해서는 국회가 재의결한 상황이니 그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선자금 수사는 미래지향적인 해결법이 지금도 가능하다. 그 핵심은 노 대통령 자신이 먼저 작년 대선 때 여당이 동원한 불법자금의 전모를 밝히고 야당도 그렇게 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검찰수사에만 의존하다 보면 대선자금정국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각 정당도 검찰의 조사를 받은 후에 시인하기보다 불법자금의 전모를 스스로 밝히면 정치계를 보는 국민의 시선이 크게 달라질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정당들은 향후 기업으로부터 일체의 정치자금을 못 받도록 하고, 개인 명의의 정치자금에는 엄격한 상한선을 두며, 모든 정당의 수입과 지출은 공인회계사가 감사한 후 이를 공고토록 하는 새로운 정치자금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도 과거 정치자금비리에 대해 아량을 베풀 수 있을 것이고,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여 과거 정치자금에 대한 사면조치도 취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과거 정치자금으로 인해 왜곡된 기업회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소추 없이 그것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정경유착이 크게 해소되어 우리 경제가 보다 더 잘 될 것이고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저평가되고 있는 주식가격도 크게 오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국가경영 우선순위에 있어 경제는 항상 중요하며 특히 선거철에는 더욱 그렇다. 이를 위해 경제를 잘해보자는 사람들을 더 많은 요직에 앉히고, 우리나라의 선거자금법 미비로 말미암은 취약한 제도를 미래지향적인 큰 정치타협을 통해 근본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다.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03. 12. 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