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국정에만 매달려라
2003-12-05
이젠 국정에만 매달려라 어제 국회에서 특검법이 재의결됐다. 투표에 참여한 266명의 의원 가운데 209명의 찬성이라는 압도적 다수에 의해 특검법이 최종 확정된 것이다. 대통령에 의해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안이 국회에서 재의결된 것은 1954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이번 특검법의 경우에는 처음 법안 통과 당시부터 재의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었다. 이미 11월 10일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부터 재적 3분의 2를 넘는 의원이 특검법에 찬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재의결도 통과될 것이 예측되고 있었다. 또한, 특검법안이 재의에서 부결될 경우 야당의 입지가 극도로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야당 측이 단합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특검법의 재의결은 결코 의외의 사태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예측되고 있던 일이라 해서 특검법 재의결이 갖는 정치적·법적 의미와 파장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특검법이 재의결되지 못했을 경우 그것이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특검법 재의결이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서는 이탈표에 의한 재의결 실패를 은근히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부된 특검법안이 재의결될 가능성이 짙다는 점은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3당 공조를 통해 재의결을 관철시킨 야당의 입장에서도 특검법의 통과는 성공임과 더불어 부담이기도 한 것이다. 반면에 검찰의 입장에서는 특검법 재의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수사중인 사건에 대해서, 그것도 수사 결과가 미진하다든지 수사 과정에 의혹이 있었다든지 하는 특별한 사정도 없이 특검에 모든 수사권을 넘겨야 한다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이 수사 주체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마저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로 인하여 최근 검찰에서는 특검법이 검찰의 수사권을 침해한 것이라 하여 한때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검법 재의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다. 여야 모두가 내년의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 표를 의식하면서 특검 문제에 집착해 왔다. 그러나 국민이 이 문제를, 나아가 정치권을 보는 시각은 매우 냉정한 것 같다. 야당의 대선자금 문제가 공교로운 시점에서 수사되고 있는 것이나, 그에 상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이 통과된 것 모두가 민생 현안을 접어둔 채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제 특검법은 확정됐고, 특검 수사가 곧 시작될 것이다. 검찰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다 할지라도 법률상의 권한인 검찰의 수사권을 특별법인 특검법에 의해 제한하는 것을 위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검이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수사하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야당에 유리하고, 대통령과 검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특검의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오히려 다수의 힘으로 특검법을 통과시킨 야당의 정치적 부담이 될 가능성도 있으며, 특검보다는 역시 검찰 수사가 더 낫다는 평가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최종적 판단자는 주권자인 국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검찰은 특검의 수사 범위 바깥에 있는 대선 자금 의혹 등을 보다 철저히 수사하여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자신의 권한을 확보하려 하기보다는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서 특검보다 나은 모습을 보임으로써 검찰의 자존심을 세우고 수사주체로서의 자격을 입증해야 할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현재 수사중인 다른 사건들마저도 특검에 넘겨주게 되는 사태까지도 배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여야는 특검이나 대선 자금, 대통령 측근 비리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국정 현안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경쟁의 자세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소모적인 정쟁으로 인한 국정의 공백과 그로 인한 국민의 피해가 다시 되풀이된다면, 국민이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헌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12. 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