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안보협력과 파병갈등
2003-11-19
한·미 안보협력과 파병갈등 17일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가 속 시원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종결됐다.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인 용산 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 미국 측은 용산 기지내 미군 7000명 중 잔류할 1000명과 가족, 군무원 등을 위해 용산기지 총면적 81만평의 30%에 해당하는 28만평을 요구했다. 반면, 한국 측은 17만평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합의를 보지 못하고 추가 협상을 계속한다는 선에서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다. 주한 미군을 이라크에 파병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하고 소문만 무성하던 의혹은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검토해 본 적이 없다”라는 말로 일축함으로써 헛소문으로 정리됐다. 그리고 3000명 범위 내의 재건 지원부대 파병안을 제시한 한국 측의 입장 표명에 대해 미국 측은 흔쾌히 수용하지 않는 인상을 풍김으로써 양국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기에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주한 미군이 대북 억지 임무에서 벗어나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도 투입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한 미군의 역할 변화를 예고했다. 이는 사실상의 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 럼즈펠드 장관이 “군사력은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치명적인 군사 능력은 필요한 시기와 장소에 융통성 있게 투입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 말에서 주한 미군의 재배치 및 감축도 미국의 군사전략에 포함돼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자주 국방의 여건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간 군사협력의 관계가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면 국민의 안보 불안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따라서 돈독한 한·미관계의 재구축을 위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한국전쟁을 통해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5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이라크 파병 문제 등 양국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나간 역사를 반추하는 일은 중차대한 국사를 결정짓는 과정에 귀중한 잣대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럼즈펠드 장관이 리셉션장에서, 한국의 어느 여기자가 왜 한국이 미국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한국전쟁 때 왜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을 위해 피를 흘려야 했었느냐”고 반문한 사실에서 미국 국민의 정서를 엿보게 된다. 한국전쟁 때 파병을 즉각 결정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기념관에 가 보면, 사망·부상·실종 등을 포함하여 13만여명이 희생된 한국전쟁에의 개입은 본인이 내린 결정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기념관 한 모퉁이에는 한국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에 미국 정부가 보낸 훈장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되돌려보내며 “당신은 이 전쟁에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없는 전쟁이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전시물도 있었다. 미국 국민은 한국전쟁 때 한국을 도운 자긍심과 정서를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새겨진 추모의 글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 싸우다 희생된 아들과 딸들의 넋을 기린다”면서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미국 국민의 정서는 미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정한 성의 표시를 기대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어떤 국가나 자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 혼자서 모든 안전 보장 장치를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군사적 억지력을 보유한 나라와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써 국가의 안위를 도모한다. 지나간 50년뿐만 아니라 적어도 앞으로 수 십 년은 미국이 한국의 굳건한 동맹관계로 남아줄 것을 기대하지 않는 한국 국민은 드물 것이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이라크 파병 문제라든지, 주한 미군의 재배치 문제 등 한국의 안보와 직결된 사안들을 보다 신중하게 재검토하여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국가 안보를 미국에 영원히 의존할 수는 없기에 자주국방의 목표를 실현해 나가야 하는데, 이 과정은 천문학적인 돈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안정적인 한·미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양국간 긴밀한 협의 아래 점진적인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북한 지역의 정보를 수집하는 미군의 U2기가 한 번 비행하는 데 13억원이나 소요된다는 사실은 한·미 군사 협력의 방향이 어떻게 설정돼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현실적 지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경민 (한양대 국제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11. 1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