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합치적 경제정책을 요구한다
	2003-11-19
헌법합치적 경제정책을 요구한다 우리 헌법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선언해 자본주의에 입각한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경제정책의 기본이념 내지 방향임을 밝히고 있다. 헌법이 기본으로 하고 있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는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더불어 지금까지 인류가 모색해온 경제, 사회 체제에 관한 최선의 제도로서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촌 대부분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체제의 지향점이자 헌법 개정의 한계 사항이다. 일부 논자 중에는 헌법 제119조 제2항이 경제에 관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허 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국가(정부)의 시장 개입이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더 욱 요청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원칙과 예외, 기본 이념과 보충 원리를 혼동한 것이다. 헌법은 어디까지나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한 다'(제119조 1항)는 대전제 하에 국가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은 이러한 기 본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예외적인 조치여야 함을 명백히 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정책(개입)은 사유재산권, 영업 내지 기업 활동의 자유, 계약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훼 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특히 헌법은 정부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간섭하려면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 절한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해, 그것도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서만 가능하도록 못 박고 있다(제126조). 이러한 절차를 무시한 민간기업 활동에 관한 정부 개입은 위헌적인 월권행위다. 적법 절차가 무시되는 조치라면 추구하는 목적과 관계 없이 공권력의 남용이자 자의(恣意)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 정부가 이른바 개혁 차원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재벌 개혁을 포함한 각종 경제 정책 역시 헌법의 틀 안에서 시장경제적 법치주의, 즉 적법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다. 시장경제는 신뢰와 예측 가능성 없이 성공할 수 없고 그 밑받침이 되는 것이 법치주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헌법적 통제 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처럼 헌법체계상 예외적이고 보충적으로 기능해야 할 정부의 시장 개입이 그 간 공익상 필요, 평등과 분배정의라는 이름 아래 일상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 그것도 많은 경우 뒤에 숨어서, 주로 규제와 간섭이라는 후진적 수단에 의지해 왔다. 정부는 시장경제의 핵심인 공정한 경쟁의 틀을 조성하는 등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지 개별 사안을 직접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정 부 실패(government failure)를 자초할 뿐만 아니라 헌법상 시장경제질서의 기 본원리에 반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공정위가 내놓은 기업 활동에 관한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강 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시장개혁 로드맵'은 앞서 본 정부의 시장 개입의 당위 성에 관한 헌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본다. 또한 비싼집에 사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고, 집을 여러 채 보유한 사람에게 무 겁게 세금을 물리는 집값 안정대책의 기본 방향은 옳다고 본다. 다만 문제는 그 내용이 너무 급진적이고 반(反)시장적일 뿐만 아니라 그 추진 과정이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세몰이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 '금리소득 수준을 넘는 부동산 투기소득은 전액 세금으로 환수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헌법 이 기본으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아무리 부동산 가격 안정이 중요하고 그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 다 하더라도 시장경제적 법치주의라는 헌법의 틀 안에서 정책적 조화점을 찾는 지혜가 요망된다. 세금만능주의나 획일적 평등주의로 치닫는 손쉬운 정책수단을 경계하면서 고민 하는 이유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질서라는 헌법의 이념을 소중 히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헌법에 위배된 정책이나 법률 등은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국민적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는 무효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태우 정부 시절 부동산 투기억제책으로 도입된 토지공개념의 핵심 법률인 토 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법 등이 그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선언돼 폐지됨 으로써 국가정책과 조세행정에 대한 신뢰성, 납세자 사이의 형평성 시비 등 사 회적 파장이 엄청난 바 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석연 (변호사 / 전 경실련 사무총장) 출처 - 매일경제 2003. 11. 19 테마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