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수사는 부패척결 시험대
	2003-11-06
대선자금수사는 부패척결 시험대 지난 6월 러시아의 최대 석유재벌 ‘유코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될 때 서방 언론들은 이것이 정치적으로 기획된 사건이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러시아 검찰은 지난달 ‘유코스’의 호도르코프스키 사장을 조세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로 체포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충격으로 러시아 주식시장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러시아 정계도 내달 총선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큰 혼란에 빠져 있다.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온 영·미 석유메이저들도 초긴장 속에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유코스’에 대한 수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재벌 손보기라는 정치적 동기에서 시작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호도르코프스키 사장은 야당에 정치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민들은 정치권의 이전투구나 재벌과의 정경유착 등으로 허탈감에 빠져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정치게임으로 외국인투자가 위축되고 재벌들의 해외 자산도피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는 데 있다. ‘유코스’사건은 그 자체만 보면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SK사건과 너무나 유사한 부분이 많다. SK가 걸려든 것도 지난 대선 때 야당에 불법 정치자금을 지원했던 것이 빌미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SK글로벌의 분식회계·비자금 조성 등이 드러났고, 재벌 총수가 구속됐다. 그런 가운데 온갖 추측과 루머가 국민적 의혹으로 확대되었다. 우선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재벌이 SK뿐이냐. 다른 재벌들은 어떻게 정치권에 돈을 빼앗기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재벌들로부터 정치자금을 걷지 않고 대선을 치렀다거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과연 믿어야 할까. 회계 분식과 비자금 조성도 어차피 우리나라 기업들의 오랜 관행이 아니었던가. 투명하지 못한 기업경영과 정치·기업의 낙후된 지배구조 아래에서 정경유착과 부정비리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려한 것이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비리를 포함해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자고 나섰다. 검찰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수사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대상과 범위를 여야 정당과 5대 재벌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수사의 공정과 형평 그리고 검찰의 독립성은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대선자금 수사 확대가 특정 정당, 특정 재벌을 잡기 위한 기획수사라는 비판이 있다. 재계에서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 확대가 침체된 우리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수사 확대를 저지할 수는 없다. 그보다 어떻게 수사가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이루어지며, 검찰의 독립성이 보장되느냐가 주요 과제이다. 재벌과 정권도 이번 기회에 정경유착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면치 못해 저평가되는 것도 불투명한 경영, 낙후된 지배구조, 정경유착 때문이라고 본다. 정경유착은 이제 척결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기업만의 노력으로 이루어 질 수는 없다. 선거 때마다 대기업 명단을 작성해서 불법 정치자금을 거두는 정치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기업이 정경유착의 희생양이 되는 현실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을 착취 대상으로 여기고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돌보지 않는 정부나 정권은 아무리 개혁을 약속해도 국민경제를 피폐하게 할 뿐이다. 우리 정치 풍토가 개선되지 않으면 많은 기업들이 해외로 자산도피를 확대할 것이다. 그럴 경우 정권은 누구의 팔을 비틀 것인가.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기업이나 자본을 세계 각국이 유치하려 경쟁하는 마당에 부패하고 낙후된 정치권과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선자금 수사 확대가 정치개혁을 이룩하고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법질서 위에서만 꽃피우며, 이런 관점에서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재웅 (성균관대교수 경제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1. 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