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鬪, 가슴보다 머리로 풀자
	2003-11-05
冬鬪, 가슴보다 머리로 풀자 노동자들의 잇단 분신과 자살로 격앙된 노동계가 동투(冬鬪)를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9일 정부의 특별담화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나 노동조합에 걸려 있는 손해배상소송·가압류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한 특단 조치가 나오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10만 노동자대회를 개최해 손배소-가압류 철폐 등을 촉구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재 산하 노조나 노조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액이나 가압류액이 40여개의 사업장에서 1500여억원에 달한다.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 시도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3권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 금지법 제정, 비정규직 차별 철폐, 부당노동행위를 하는 사업자 구속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도 사용자가 노조를 지배·개입할 목적으로 하는 손배소나 가압류에 대해 제한을 두는 방안을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입법조치를 올해 안에 국회에 상정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경영계는 물론이고 노동계에서조차 ‘공자 말씀’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대로 노동3권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가압류 금지법은 물론이고 정부가 추진하는 노조활동 관련 가압류 한도를 낮추는 방안도 다른 민사사건과는 달리 노조활동과 관련된 가압류만을 예외로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소야대인 국회 상황은 고려하지 않더라도 정부 내에서조차 합의를 이루어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손해배상·가압류 문제, 그리고 비정규직 보호를 둘러싼 현재의 노사관계 현안은 노동계의 동투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 방식으로는 풀 수 없고, 오히려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근원적으로 안정화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지난 20여년 가까운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나름의 틀 속에서 안정화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노사관계를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풀고자 하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노조를 조직해 파업행위를 하는 경우, 사용자들이나 다른 부분에도 피해가 예상됨에도 보호하는 것은 근로자들이 노사관계에서 약자적 위치에 있음을 상정한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노동3권의 행사는 엄격한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공통된 규제이다. 우리나라의 노동권 보호의 틀이나 규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와 있다. 공무원 등 공공부문은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으나, 민간부문의 경우 노동권과 관련된 법적 규제나 정부정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조나 근로자들은 여전히 노동권 행사에서 감정에 치우쳐 행위의 합법성 여부를 별로 고려하지 않으며, 사후 처리 를 보아도 결국은 정치적인 해결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늘 불안하고 외국인 투자자 유치에 가장 큰 걸림돌의 하나가 되는 이유이다. 손배소나 가압류 문제도 우선 노조활동과 관련돼 근로자나 노동조합의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민사상 면책특권이 생기기 때문에 손배소나 가압류 문제가 노사간 현안이 될 소지조차 없는 것이다. 노동계가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하여 손해배상 등 민사상 책임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파업시 불법행위를 계속하겠다는 얘기와 같다. 동료 노동자들이 분신하는 상황에서 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하나, 동투를 통해 무리한 요구사항을 쟁취하려 하기보다는 노동부 장관의 말대로 냉정한 머리로 문제 해결을 위해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근원적으로 안정시키고 근로자 자신들도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朴英凡 (한성대 노동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1. 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