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국가재난관리
	2003-10-24
허술한 국가재난관리 정부가 이달중 소방방재청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할 방침을 밝힘에 따라 이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태풍 ‘매미’에 대한 정부의 후속조치가 다시 한번 국가재난관리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는 태풍 매미가 발생한 직후 차관급을 청장으로 한 소방방재청 신설을 골자로 정부조직법 개정 및 재난 안전관리기본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 2월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재난대책 일원화라는 명목 아래 신설키로 한 소방방재청이 태풍 매미로 인해 서둘러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후속조치는 한마디로 말해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정부조직 개편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왜냐하면 소방과 방재 행정의 성격과 담당행정요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구지하철 사고와 같은 인위재난은 발생한 곳이 지하철 중앙역 등 특정지역에 한정된데다 장소와 시간을 예측할 수 없이 일어났다. 이같은 돌발 상황을 수습하려면 무엇보다도 신속한 대응체제가 생명이다. 반면 태풍 루사와 매미의 경우 발생 며칠 전부터 기상특보가 발령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했다. 이렇게 인위재난과 자연재해는 발생원인에서부터 다르며 대처방식, 구조 및 사후복구 등의 업무에서도 크게 다르다. 이 때문에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인위재난은 긴급구조인력과 장비를 확보하고 있는 소방청이 설립된다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풍 매미와 같은 자연재해는 특정부서가 아니라 정부의 모든 부처가 동원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예컨대 사망과 실종자 수습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담당해야 하고 태풍발생예보 등은 기상청이, 정전문제는 한국전력, 교통두절은 건설교통부, 농작물피해는 농림부, 통신두절은 정보통신부, 각종 전염병 예방은 보건소, 이재민 구호는 보건복지부, 복구인력투입은 국방부, 재해 피해조사 및 보상 문제 등은 행정자치부와 해당 지자체, 철도복구는 철도청 등이 관련을 맺고 있다. 이밖에 세제혜택문제는 재정경제부, 행자부 등이 간여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재해 업무는 중앙 부처의 대부분이 관련되어 상호보완과 협조가 요구된다. 따라서 소방방재청 신설은 재해재난 대처능력을 지금보다 더 약화시킬 것이다. 만약 이 점을 간과한다면 향후 대형 재해발생으로 인한 피해예방 및 복구 등에서 막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점은 방재선진국인 일본에서 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차관급인 국토청(우리나라의 건설교통부) 중심으로는 재해예방 및 복구에 한계를 느껴 2001년 장관급인 내각부 방재담당특명대신으로 격상시키는 등 방재업무의 권한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차관급인 ‘청’ 단위로 방재행정을 격하시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람직한 방재조직 개편으로는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를 전담하는 소방청을 따로 신설하고 대통령 또는 총리실 산하에 방재분야를 전담하는, 예를 들면 위기관리부와 같은 장관급 조직을 두는 방안이다. 자치단체에 대한 지도-감독을 청 단위의 소방방재청으로는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재해특성을 고려해 부처간 업무협조나 총괄조정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방재기능을 행자부에 남기고 전담조직과 인력을 확충해 운영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필요가 있다. 현 정부는 대선공약사항이라는 측면에서 소방방재청을 정치적으로 신설하는 것보다 전문가 집단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국민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姜承弼 (서울대 환경공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0. 2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