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北이 답해야 한다
	2003-10-22
이젠 北이 답해야 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이뤄진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다자간 틀 안에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이 내용을 정상회담 공동발표문에 포함시켰다. 부시행정부가 대북 안전보장 문제를 공동선언에 처음으로 명시함으로써 북핵 문제의 해결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8월 말 제1차 베이징 6자회담에서 제시된 미국과 북한의 단계적 해결방안들은 내용이 엇갈려서 합의점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북한이 가장 심각한 의견 차이를 보인 부분은 미국이 대북한 안전보장 조치를 북한의 핵폐기 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북한은 미국과의 불가침협정의 체결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건국 이후 그런 조약을 체결한 전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난관에 부닥칠 경우 군사적 수단의 사용에 대한 법적 제약장치가 될 수 있는 불가침조약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처음으로 ‘북한의 선 핵폐기 이후 안전보장 고려’라는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해 북한의 핵폐기 과정과 동시병행적으로 대북 안전보장을 다자틀 안에서 해줄 수 있다는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 변화는 북미 양국 사이의 ‘단계별 동시병행 실시 방식’을 주장해온 노무현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노무현정부의 이라크파병 결정 이후 한미동맹관계가 안정궤도에 올라서면서 한미공조체제가 대폭 강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대북 안전보장 형식은 북미 양자 합의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선언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선언은 미국 내에서 파월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의 주장을 부시 대통령이 수용한 결과이고, 일방주의적 노선에서 탈피하려는 부시행정부의 변화된 외교전략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이 또다시 이 합의를 파기할 경우 미국은 주변 5개국과 연대해 외교적인 대북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채택문의 이점이라 할 수 있다. 또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제안 없이 대북한 제재를 위한 요식적 단계로서 6자회담에 임한다면 미국은 향후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조치에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진전된 미국의 입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적극 수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1차 베이징회담 이후 북한은 다자회담의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핵 실험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북한은 핵 실험과 보유를 선언할 경우 안보딜레마에 직면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 딜레마의 핵심은 바로 북한의 핵 보유는 주변국가들의 핵 보유를 촉발시킬 것이고 유엔을 통한 제재로 이어짐으로써 오히려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 정상의 대북 다자안보보장 선언으로 북한은 핵폐기를 통한 외부의 경제 지원을 추구할지 아니면 핵 보유 선언을 통해서 군사적, 외교적 제재에 직면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노무현정부는 북한의 선의에만 의존하지 말고 북한이 다자회담을 거부할 경우에 대비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압박수단을 미국과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할 경우도 대비해 철저한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金暎浩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0.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