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품과 장기불황
	2003-10-09
부동산 거품과 장기불황 부동산가격 급등이 드디어 대통령까지 발 벗고 나서는 극한적인 상황까지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킬 것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며 ‘강남 부동산가격을 잡기 위해 근본대책을 세우겠으며 지금 대책으로 부족하면 그 이상의 강도 높은 대책을 언제든지 실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분양권 전매금지와 재건축 소형평형 의무건설 비율 확대 및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 지정, 양도세와 보유세 강화 등 부동산시장 규제를 위한 초강력대책을 있는 대로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약효는커녕 오히려 부작용이 나오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백약이 무효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 정부정책에 대한 시장의 경험적 신뢰상실에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에 떠도는 아이러니 중의 하나가 정부정책 믿으면 손해보고, 거꾸로 하면 돈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반응인가. 그러나 불행히도 2001년부터 부동산시장은 이 아이러니가 진실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책이었던 부동산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대란 및 신용불량자 양산 문제 등에 책임이 있는 국민의 정부 관료들을 참여정부 경제팀의 전면에 대거 기용한 이상 어쩔 수 없이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둘째, 2000년 총선을 앞두고 IMF 조기졸업이라는 정치논리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구조조정이 9·11테러 이후 완전 실종되어 무려 4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이 생산부문으로 흘러가지 않고 비생산적 부동산 투기수요를 증대시켰던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행은 구조조정이 선행되지 않은 기업시장에 금리인하를 통한 수혈만을 주장하였던 바, 결국 금리인하는 부동산 투기라는 내재적 병리현상만을 더 부채질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시장의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동맥경화현상을 보이고 있는 금융 및 기업시장의 구조조정을 통한 개혁만이 유일한 대책이지만, 이는 고통과 인내와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현 경제팀에게는 체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만약에 올해와 같은 극도의 저성장 현상이 2∼3년간 지속되거나, 또는 마이너스 성장이 시현된다면 우리 경제도 일본과 같이 장기복합불황이 올 수도 있다. 그 경우 우리 경제는 일본보다 산업경쟁력이 뒤떨어지고 재정이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회복불능의 대형 경제난을 맞을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현재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이나 뒷북치는 정부정책 모두 일본의 1990년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위험한 것은 부동산시장을 총체적 경제정책의 일부로 접근하지 않고 그 자체를 분리, 히스테리적 대응책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 경제팀은 구조조정과 같이 힘든 정공법으로 문제를 접근하기보다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즉각 가시적 성과를 보이기 위한 극약처방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통한 부동산시장의 연착륙 없이 초강수의 강남 집값잡기식의 극약처방으로 버블이 일시에 터지게 되면 금융권에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연쇄도산이 일어나 경제 전체에 장기적 불황이 확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따라서 갈 데까지 간 강남 부동산가격은 오히려 시장원리에 맡겨두고 이제라도 근본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복합불황의 위험을 줄이고 우리 경제의 질을 높여 잠재성장력이 확충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權泳俊 (경희대 경영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0. 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