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은 정체성 분명히
2003-09-22
신당은 정체성 분명히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천년민주당 내의 당 체제 개편 논의가 결국 당의 분열과 신당 창당으로 일단락됐다. 지난 20일 ‘국민참여통합신당’이 김근태 의원을 원내대표로 하는 교섭단체 등록을 마침으로써 이제 정치권은 언론의 표현대로 ‘새로운 4당 시대’에 접어들었다. 신당 창당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듯하다. 차기 총선을 얼마 앞두고 있지 않은 시점이라서 신당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이번 통합신당의 창당은 정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신당의 등장으로 외형적으로 4당 체제가 재등장했다고 하지만 1987년 이후 생긴 4당체제의 핵심은 지역주의였다. 그러나 통합신당은 배타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확고한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경남·경북·충청·호남으로 각 지역을 ‘분할 지배’해 온 4당 체제와 똑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신당 창당은 지역주의 극복에 그 명분을 두고 있다. 지난해 말 노무현 후보의 당선과 함께 3김 시대의 종식과 지역주의 극복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한나라·민주당·자민련이 모두 그동안 지역주의로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정당들이라는 점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정당 내부의 변혁을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지역주의 정당 구도를 깨려는 시도가 이와 같이 신당 창당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출범한 통합신당을 199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창당됐던 통합민주당과 비교해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통합민주당은 당시 3김 정치와 지역주의를 거부하며 창당됐고 선거 운동 과정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지만 득표율 11.2%, 의석 1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고 기존 정당에 흡수돼 버렸다. 사실상 3김 체제에 의해 와해돼 버린 셈이다. 당시 통합민주당에 참여한 인사 가운데 김원기 이부영 유인태 씨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 때로부터 7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이제 3김이 정치적으로 퇴조한 가운데 이번에는 통합신당을 통해 유사한 도전이 다시 시도되고 있는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4당 체제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유권자의 안정적 지지를 반영하고 있었다면 이번의 4당 체제는 선거를 통한 정당 체계의 변화(dealignment 혹은 realignment)가 기대되는 시점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점에서 과거 통합민주당이 처했던 정치적 상황에 비해 통합신당의 처지는 한결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신당을 노무현당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데 과거 김대중당, 김영삼당은 이들 정치 지도자들이 사실상 당의 ‘소유주’였고 그들의 공천이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통합신당이 노무현당이라는 한나라당의 비판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제 어느 정당도 과거와 같은 ‘오너’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신당 참여자들은 노 대통령의 인기도 하락으로 노 대통령과의 연계가 득표에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당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이나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노 대통령의 입장과 매우 가까워 보인다. 노 대통령 자신도 신당에 대한 지지 의사를 우회적으로나마 표시한 바 있다. 이처럼 신당이 지역주의 타파나 정치개혁 추진에 대해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세력의 결집이라면 신당은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 신당 창당 추진의 명분과 원동력 또한 지난 해 말 노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비롯된 일이다. 따라서 통합신당의 창당과 노 대통령이 결코 무관한 입장이라고 할 수도 없고, 사실 누구도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지역주의와 3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창출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갖고 출범한 정당이라면 자신들의 정치적 리더십을 분명하게 밝히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신당은 오히려 노무현당이 돼야 마땅하지 않을까. 강원택 (숭실대 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9. 2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