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계좌추적권 폐지를
	2003-09-19
공정위 계좌추적권 폐지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금융정보요구권(계좌추적권)을 5년 더 연장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계좌추적권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부당 내부거래 혐의가 발견되면 관련 금융기관에 금융 거래 정보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으로서, 법원의 영장 없이 직접 발동할 수 있다. 1999년 2월에 2년간 한시적으로 도입되었다가 2001년 3년간 연장되어 2004년 2월에 기한이 만료될 예정이다.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내부 거래에 있으므로, 그 정당성은 우선 계열기업간 내부거래가 그러한 거래를 하는 해당 기업이나 경제 전체에 손해가 된다는 논리로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가 제시하는 논리는 그다지 튼튼하지 않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잘 알려진 것들이다. 첫째, 내부거래를 통해 주주가 서로 다른, A기업의 자금을 B기업에 부당하게 유출시킴으로써 소액주주 등 이해 관계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A기업의 주주 모두가 손해를 본다. 따라서 주주 전체의 이해에 반(反)하여 행동할 유인이 별로 없는 경영자가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내부거래를 하는 것은,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켜 장기적으로는 A기업에도 이익이 된다는 경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경영 판단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제3자가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일이 아니다. 둘째,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이 필요하다고 하는 측에서는 내부거래를 통해 계열기업이 아닌 다른 독립기업을 배제함으로써 잠재적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외 경제가 빠른 속도로 통합돼 가는 국제화 시대에 내부거래는 진입 장벽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셋째, 내부거래를 통한 다각화 등 선단식 경영이 기업집단 전체의 부실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규모 기업집단은 사업 다각화를 통하여 여러 가지 거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생산 구조로 진화해 온 존재라는 사실을 잘 인식해야 한다. 넷째, 시장 구조상으로 독점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이 독점 이윤을 계열기업으로 옮겨서 독점 이윤에 대한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점의 궁극적인 원인은 정부에 의한 진입 장벽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경쟁 상태에서 단 하나 남은 기업은 시장 구조상으로는 독점이지만, 다른 기업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섯째, 내부거래를 규제하여 독립 경영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지배 구조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개념은 시장 과정을 통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법적 제약에 의해 그렇게 형성된 것이라는 미국의 법학자 마크 로(Mark J. Roe)의 연구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전문 경영인에 의한 경영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론이나 실증도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계열기업간 내부거래를 ‘부당’이라는 이름 아래 법적 제재를 가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도 심사숙고(深思熟考)해야 한다. 기업은 본디 외부거래(시장거래)를 내부거래로 전환시켜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조직이다. 또한, 대규모 기업집단은 한국만이 아니라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신흥 공업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호 거래를 통해 시장 정보를 창출하고 여러 가지 거래 비용을 절감하는 방편으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내부거래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파악해야 한다. 1인당 2만달러 소득이 아득히 멀게만 보이는 현 시점에서 성장의 견인차인 기업의 손발을 묶어 두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기업간 내부거래에 대한 공정위의 논리가 타당하지 않은 만큼 계좌추적권은 즉각 폐지돼야 한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출처 - 문화일보 2003. 9. 1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