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예산안 설득력 없다
2003-09-02
정부예산안 설득력 없다 국민의 새로운 기대 속에 출범한참여정부가 역대 정부와는 달리 국정의 목표로 ‘동북아시아 중심국가’ 건설이라는 거창한 비전을 제시한 것은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중국과 일본의 눈치를 보면서 이를 갑자기 ‘동북아시아 경제중심’으로 바꾸어 실망을 안겨 주기도 했다. 그런데 출범 6개월 동안 참여정부의 정책 흐름을 보면, 제시한 국정의 비전과는 거리가 먼 정책 혼선을 거듭함으로써 국민을 실망시켜 경제 위기 의식마저 불러일으켜 왔다. 당초 올해 경제성장률을 6.2%로 전망했는데, 참여정부는 이를 5.3%로 수정했고, 5월에는 다시 4.2%로 낮추었으며, 6월에는 또 다시 3.1%로 재수정하는 등 전망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경제정책은 땜질식 임시방편으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에 대한 큰 기대가 사라지고 지지율도 떨어지기 시작하자 정부는 국정 비전인 동북아 경제 중심이 추상적이고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해, 보다 설명하기 쉽고 구체적인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경제를 크게 도약시켜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 활동 무대 자체를 크게 넓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며, 또한 무엇보다도 고도 성장을 계속하여 2만달러 시대를 열어나가는 것도 필수적인 코스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제시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과 2만달러 시대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정책 비전 자체는 시의 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 활동의 무대를 넓히고 경제 도약의 틀을 높였다고 해서 국민경제가 하루 아침에 수평적으로 확대되고 수직적으로 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의 범위를 넓힐수록, 소득 목표를 높일수록 여기에 어울리는 자원과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두 가지 국정 비전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구체적인 정책 수단과 방법, 과정과 계획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비전이 구호에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중요한 정책 수단은 무엇보다도 재정과 금융정책이며 이들은 그 자체의 정책 효과는 물론이고 경기 정책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두 가지 국정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재정·금융의 정책 의지를 구체적으로 밝힌 바 없다. 오히려 금융정책의 경우 시중에 단기 부동자금이 400조원에 달해 더 이상 금리정책에 의한 경기 활성화의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재정정책의 경우도 최근 참여정부가 처음으로 짠 2004년도 정부예산안을 보면 긴축성 균형재정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두 가지 국정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한참 거리가 먼 재정이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 규모를 올해보다 2.1%(2조4000억원) 늘어난 117조5000억원으로 잠정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초긴축 예산안은 국방비를 8%(1조4000억원)나 크게 올렸으나 성장동력산업 개발이나 중소기업 지원, 그리고 사회간접자본 부분은 거의 동결시켰기 때문에 동북아의 경제중심이나 2만달러 시대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국정 비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책인 것이다. 우리는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1995년에 달성했으며, 일본과 싱가포르가 7년만에 다시 2만달러 시대로 올라섰다면서, 우리도 곧 2만달러 시대가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8년간이나 제자리걸음을 하고있는 실정이다. 1만달러 시대도 손쉽게 이룩한 것이 아니라,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헝그리정신(동물적인 근성), 그리고 외국 자본과 피땀으로 이룩한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방비만을 많이 늘려 가지고 고도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책임한 발상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예산 편성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인 내년도 경제 전망에 대해서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흔히들 지금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때보다도 경제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예산 당국은 금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돼 내년에는 8%의 높은 경상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 당국이 세입 내에서 세출을 결정하여 균형예산을 편성했다고 주장하지만 매년 추경예산의 편성이 관례화한 것을 감안할 때 재정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극히 의심스럽다. 그리고 자주국방을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지만, 초긴축 재정 속에서도 유독 국방비만을 크게 증액시킨 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따라서 정부는 국정 비전과 내년도 예산 편성의 상관 관계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해명과 정책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정부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국정 목표와 정책 수단간의 엇박자를 조화시켜 국민에게 내일의 밝은 비전을 믿을 수 있게 해주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이종훈 (경실련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3. 9.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