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는 언제, 어디까지 정당화되는가?
	2003-08-29
금융규제와 시장규율 - 금융규제는 언제, 어디까지 정당화되는가? 규제의 공급자로서의 정부 금융업은 산업 중에서 정부의 규제가 가장 많은 업종이다. 금융업에 대해서는 업종별로 규제법령이 있고 그 법령을 집행하는 별도의 감독기관이 있다. 규제를 전업으로 하는 조직이 있게 되면 조직의 생리상 조직 내부에서 규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성향이 발생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또한 조직 외부에서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관치금융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이해가 걸리는 대목에서는 감독당국의 규제를 요구하는 경향이 그 예이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규제가 점점 늘어나게 되고 결국은 그것이 도를 지나치게 되면 사회적으로 규제가 과도하다는 여론이 일게 되고 마치 강바닥의 준설작업을 하듯이 과도한 규제를 정비하는 작업이 반복되곤 한다. 규제는 시장에서 경기규칙(rule of game)이다. 룰은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생명으로 한다. 게임의 룰이 수시로 변경되면 경기에 전력을 다해야할 플레이어들이 경기 도중에 혹시 룰이 바뀌는 것이나 아닌지를 걱정하고, 게임의 룰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변경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자원을 투입하게 한다. 너도 나도 이런 방식으로 경기외적인 경쟁에 신경을 쓰게 되면 경제는 생산적인 곳에 희소자원을 배분하지 못하고 다름 사람의 몫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분배적인 활동에 치중하게 되어 경제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된다. Rent seeking activity 라고 불리우는 이런 행위는 정부가 규제를 만드는 한,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금융규제라고 특별해야 하는가? 금융규제는 과연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정부가 규제할 사안이고 어디까지가 시장이 스스로 알아서 할 사안인가? 특정한 사안에 대해 규제의 도입 여부를 검토할 때 그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단초를 찾기 위해 전형적인 금융규제인 ‘동일인 여신한도’ 규제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금융회사는 동일인에 대해 자기자본 또는 자산의 일정 비율 이상의 여신을 공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회사의 영업에 대한 규제이다. 동일인 여신한도 규제는 여신이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경우 그 거래선이 지급불능에 처했을 때 금융회사가 부실화될 수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가해지는 규제이다. 이러한 규제는 과연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그런데 거래선이 특정인에게 집중되면 사업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금융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업종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고 모든 기업이 사업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거래선이 집중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성은 정부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기업 스스로 또 기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들 스스로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기업평가 보고서를 보면 거래선이 너무 편중되어 있어서 안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을 접할 수 있다. 국가의 경우에도 수출선이나 수입선이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나 최근 들어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경제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업의 경영자라면 업종을 불문하고 거래선을 다각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마련이고 거래선이 다각화되지 못한 기업과 거래하는 사람은 그에 따른 사업리스크를 감안해서 거래 여부, 거래 조건을 결정한다.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은 수익성은 동일하더라도 거래선의 다각화 면에서 차이가 있다면 거래선이 다각화되지 못한 기업의 주식은 보다 낮게 평가하고 가격이 충분히 낮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나 자금을 빌려주는 채권자도 거래선이 다각화되어 있는 회사를 선호하기 마련이고 거래선이 집중되어 사업 리스크가 큰 기업과 거래할 때에는 리스크를 지는 데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채권자는 높은 금리를 요구할 것이고 납품업체는 보다 높은 단가를 요구하거나 대금 결제일을 최대한 단축하려고 할 것이다. 금융회사에 예금하는 사람들도 그 금융회사가 특정한 기업의 생사와 그 운명을 같이 할 정도로 여신이 편중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금융회사와 거래하기를 꺼릴 것이고 그러한 금융회사가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예금금리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리스크가 있음을 알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대가를 받고 거래를 한 상황에서 우려했던 리스크가 현실화되어 상대방이 부실화된 경우 그 결과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거래 시점에 이러한 리스크를 점검하지 못하고 리스크에 대한 응분의 대가도 요구하지 못한 채 거래를 하다 거래 상대방이 부실화된 경우에는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는 거래 당사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 책임 하에 대처해야할 사안이 아닌가?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에 대한 차등 규제 그러면 왜 정부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동일인 여신한도 규제를 하면서 다른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동일인 거래한도 규제를 가하지 않는 것인가? 금융회사와 비 금융회사간의 어떤 차이점이 규제의 차이를 가져오는가? 이에 대해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예금을 유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규제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불특정 다수인이 거래를 하는 금융회사의 경우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모니터링 하는 일이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아무도 모니터링을 하지 않게 되므로 정부가 대신 모니터링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규제의 필요성으로 제시한다. 보다 단순하게는 정보와 분석능력에 한계가 있는 다수의 소비자를 정부가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 필요성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다수의 소비자와 관련된 거래는 예금거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과 소비자간의 거래는 대부분 다수의 소비자와 관련된 거래이다.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의 입장과 예금을 하는 고객 간에 거래 상대방을 선택하는 데에 어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가? 자동차는 내구 소비재로 제조회사가 부실화되어 부품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애프터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입는 피해가 클 수 있다. 그러므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도 제조회사의 건전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개별 소비자가 자동차 제조회사의 건전성 여부를 모니터링 하는 데에는 예금자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모니터링 하는 데에 발생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문제가 동일하게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 제조업에 대해 정부가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와 유사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을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가? 자동차 제조업체가 부실화되면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문제를 시장에 맡기고 있다. 소비자들이 자동차 제조회사의 건전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대신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동일인 여신한도 규제가 결과적으로 다수의 소비자를 보호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다수의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융회사에 대한 동일인 여신한도 규제의 근본 목적이 다수의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것은 아니다. 그러면, 금융회사에 대해 동일인 여신한도를 규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금융회사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 리스크(system risk)의 가능성이다. 시스템 리스크란 한 회사의 실패가 동종 업종의 다른 회사의 실패로 전이, 확대될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은행업은 이러한 시스템 리스크에 크게 노출되어 왔다. 어느 은행의 대출이 부실화되어서 그 은행의 지급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 그 은행의 예금주들은 은행창구로 달려가 자신의 예금을 인출하려고 한다. 이른바 뱅크런(bank run)이 발생한다. 그런데 어느 한 은행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다른 은행의 예금주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금을 인출하려고 은행으로 달려간다. 그 결과 모든 은행 창구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모든 은행들이 지급불능에 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은행의 지급결제기능과 신용공급 기능이 마비되고 경제 전체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은행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은행업에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 크고 은행업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자산・부채 구조상 mismatch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거래 당사자간에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에 차이가 있는 것을 말한다. 시장의 모든 거래에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만 은행업의 경우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크다. 은행업은 근본적으로 약속을 거래하는 업이다. 예금을 하는 행위는 예금주가 일정한 금액을 일정한 기간 동안 은행에 예치하면 은행은 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더한 금액을 일정 기간 후에 예금주에게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거래하는 것이다. 대출은 은행이 차입자에게 일정 금액을 일정 기간 동안 빌려주면 차입자가 일정 기간 후에 원금에 소정의 이자를 더한 금액을 상환하겠다는 약속을 거래하는 것이다. 거래 상대방이 이러한 약속을 이행할 능력과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은행의 대출 금리는 시장의 균형 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수요량 보다 공급량이 작은 수준에서 대출금리가 결정되어 대출에 대한 초과수요가 존재한다. 그 원인을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품 거래에 있어서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제품을 판매한다. 그러나 대출 거래에 있어서는 높은 금리를 지불할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에게 대출을 하지 않는다. 높은 금리를 지불할 의사를 표시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실제 지급 능력이나 의지를 나타낸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 궁지에 몰린 사람일수록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 있다. 또 투기성이 큰 모험적 사업에 자금을 투자해서 성공하면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고 실패하면 부도를 내고 말겠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금리를 지불할 의사를 표시할 것이다. 이렇게 대출 거래에서는 제시하는 금리 수준이 그 사람의 지급 능력이나 의사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은 대출 금리를 시장의 균형 금리보다 낮게 정하고 창구에 줄을 서는 대출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상환능력에 대한 별도의 심사를 거쳐 대출을 한다. 이렇게 물건을 팔면서 정해진 가격을 지불할 용의를 표시하는 데도 구매자에 대해 별도의 심사를 해야 하는 업은 결코 흔치 않다. 이렇게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대출이라는 거래로 자산을 운용하는 은행의 지급능력을 예금자가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출금 중 얼마가 부실화 징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은행과 예금자간가 알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보에 대한 비대칭성이 커서 사람들이 느끼는 정보의 불확실성이 큰 경우에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 중의 하나가 이른 바 herd behavior이다. 어느 한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집단적으로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사람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를 알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자신이 모르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믿고 우선 따라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보에 대한 비대칭성이 크다고 해서 항상 이러한 herd behavior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뛰기 시작한 사람의 정보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도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뛰었을 수 있다. 정보의 정확성 여부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사후적으로 판명된다. 앞서서 뛴 사람이 가진 정보가 정확한 것일 때 신속히 뒤따라 뛰지 않을 경우 입게 되는 피해가 클 수록, 또 그 정보가 잘못된 것임에도 괜히 뒤따라 뛰는 것이 되는 경우에 치러야 하는 비용이 적을수록 사전적으로 herd behavior가 합리적인 대응이 된다. 예금보험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은행 예금자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자. 은행 창구로 달려가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 정확한 것임에도 뒤늦게 반응을 보일 경우 자신은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 전액을 잃을 수 있다. 그 반면에 달려가는 사람들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치루어야 할 대가는 별로 크지 않다. 요구불 예금은 언제든지 예금자가 인출을 요구하면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만기가 있는 정기예금이라고 하더라도 만기 전에 인출을 요구하는 경우 만기 지급 이자의 일부만 포기하면 된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은행 창구로 달려가 예금을 인출하는 것을 본 사람은 이유를 불문하고 자신도 그들과 같이 따라서 행동하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이 된다. 그런데 bank run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부실한 은행에서 그것이 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건실한 은행에까지 전염되는 경향이 있고 건실한 은행도 bank run이 발생하면 지급불능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은행의 자산・부채 구조에 기인한다. 은행은 단기자금을 모아 장기로 대출하는 금융중개기능을 담당한다. 은행의 부채인 예금은 만기가 장기인 정기예금인 경우에도 예금자가 만기 이전에 인출을 요구하면 약정 금리 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벌칙을 가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급의무를 가지는 부채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반면에 자산운용면에서는 1년 이상 장기 대출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고 차입자가 이자를 제대로 내는 등 정상인 상황에 있다면 만기 이전에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는 없다. 이러한 자산・부채 구조로 인해 예금자들이 일시에 집단적으로 예금의 인출을 요구하는 bank run이 발생하면 건실한 은행인 경우에도 지급불능 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은행업에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시스템 리스크야말로 은행업에 대해 동일인 여신한도라는 규제를 가하게 된 배경이다. 제조업에는 과연 이러한 시스템 리스크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래서 동일인 거래한도 규제가 없는 것인가? 섬유업종이 불황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느 특정 섬유업체가 부도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섬유업종 전체가 자금난을 겪는 경향이 발생한다. 채권자들이 섬유업체에 대한 여신을 회수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건실한 섬유업체도 자금사정에 애로를 겪게 된다. 그런데 섬유업체는 업체 별로 자산・부채 구조가 매우 다양하다. 부채가 단기 부채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유동비율이 좋지 않은 업체는 그러한 상황에서 지급불능 상태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에 부채의 만기가 장기이고 유동비율이 좋은 업체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지급불능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 은행업의 경우 업의 속성상 시스템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섬유업의 경우에는 업종의 성격 보다는 개별 기업의 재무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시스템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하기 어렵다. 금융업에 유독 정부의 규제가 많고 비금융업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부의 규제가 금융업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금융업은 여타 업종과 달리 시스템 리스크의 정도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업 중에서도 업종의 성격에 따라 시스템 리스크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 은행과 같이 시스템 리스크가 큰 업이 있는가 하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여신전문업인 경우 시스템 리스크 면에서 제조업과 별 차이가 없는 업종도 있다. 금융관련 법령은 금융업종간에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를 반영하여 규제의 강도를 달리하고 있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금융규제를 목적별로 구분해 보면 크게 시스템 리스크 방지, 소비자 보호, 효율성 제고, 기타 사회적 목적에 의한 규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규제 목적 중에서 소비자 보호, 경쟁 촉진, 기타 사회적 목적에 의한 규제는 본질적으로 금융업이 아닌 다른 업종에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논리적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만 한다. 시스템 리스크 방지 목적의 규제는 금융규제에 특유한 사항이다. 다른 업종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금융규제가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것이 금융업에 특유한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논의: 계열사주식 의결권 제한의 경우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지배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해야한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주요 쟁점의 하나 가운데는 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가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과연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는 지를 살펴보자.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가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2002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예외적으로 임원의 선임 또는 해임, 정관 변경, 다른 회사로의 합병, 영업의 전부 또는 주요 부분의 양도 행위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그 계열사 발행주식의 30% 범위 내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최근의 논의는 이러한 예외 인정이 잘못된 것이므로 예외조치를 없애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여러 가지가 제기되고 있지만 의결권 행사를 허용할 경우 1)기업 지배권 시장의 활성화 정책방향과 상치되어 아무리 부실한 경영을 하여도 경영진 교체, 정관변경, 영업 양수도 등이 불가능하게 되며, 2)그룹체제의 유지를 위해 예금자, 계약자 등 불특정 다수의 고객의 이익과 상충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고, 3)우리나라 생명보험과 투신시장은 수익성과 안정성 보다는 대형재벌사의 브랜드에 영향을 받아 시장점유율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의결권 행사가 남용된다고 하더라도 시장규율에 의해 통제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먼저 기업지배권 시장(market for corporate control)과 관련한 주장을 살펴보자. 이러한 주장은 내세우고 있는 규제의 목적 자체가 기업지배권 시장의 활성화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업지배권 시장의 활성화라는 목적은 금융규제의 목적상으로 보면 효율성 제고 내지는 기타 사회적 목적에 의한 규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금융업에 특유한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한 규제이므로 다른 업종에 적용하여도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계열사를 통한 지분 소유가 기업 지배권 시장에 대해 미치는 영향 면에서 볼 때에는 금융계열사를 통한 지분 소유든 비금융계열사를 통한 지분 소유든 그 차이를 찾기 어렵다. 기업지배권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이 출자하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기업이 출자한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를 금지시켜야 하는가? 이러한 주장이 논리적으로 궁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업지배권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논의는 기본적으로 회사의 경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경영자를 감시할 유인을 가진 대주주가 존재하지 않을 때 대주주에 의한 감시의 대체 수단으로 거론되는 이야기이다. 회사에 대주주가 존재할 때에는 대주주가 책임을 지고 경영을 할 권리가 있다. 그 대주주가 개인인지 기업인지는 구분할 이유가 없다.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은 지배주주가 경영진의 경영성과에 대해 매년 평가하고 성과가 부진한 임원은 경질한다. 기업지배권 시장은 지배주주가 없어 경영진이 주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경영행태를 보일 때 사후적으로 시장에서 지배주주를 형성하여 경영진을 교체하는 시장이다.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시장의 압력이 작용하도록 강제하자고 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발상이다. 회사의 성과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그 회사의 주주, 특히 지배주주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주식회사 제도와 시장경제는 존립할 수 없다. 또한 지배주주가 개인인지, 기업인지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주주권에 차등을 둘 이유도 없다. 두 번째 논거로 제시되고 있는 그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예금자 등 불특정 다수의 고객의 이익과 상충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금융업에 대해서는 시스템 리스크 방지 차원에서 자산운용과 관련하여 일반 기업에는 없는 별도의 규제가 가해진다. 동일인 여신한도나 투자한도 규제가 그러한 예이다. 그러한 규제에 적합하게 취득한 주식에 대해서도 그 주식이 계열사 주식인 경우에는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계열사 주식인 경우에는 운용자산으로서 주식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알면서도 다른 동기에 의해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그 이유로 제기한다. 그럴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큰가? 그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일 것이다. 그렇게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여 규제를 가하자면 규제해야 할 대상이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계열사에 대한 대출금에 대해 고의적으로 사후 관리를 소홀히 할 가능성은 없는가?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자면 분명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막기 위해 계열사 대출에 대해서는 만기와 원리금 상환 방법을 별도로 규제할 것인가? 지배주주가 제3자 명의로 가공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 명의로 대출을 받아 고의로 부도를 내는 방법으로 고객의 자금을 편취할 가능성은 없는가? 분명히 있다. 이런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규제를 도입해야 하는가? 기업에 대한 대출을 모두 금지시키고 국공채만 매입하도록 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들을 전제로 별도의 규제를 가한다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그러한 상황들은 정상적인 경우에는 발생하지 않을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고 범죄행위를 상정하고 있다. 투자신탁에 가입한 고객의 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주식을 편입시킨 후 그 주식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알면서도 다른 목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면 그것은 배임행위가 될 것이다. 그런 예외적인 행위는 금융회사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회사, 모든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를 규율하는 일반법이 따로 있다. 민법이나 상법, 형법 등이 그런 법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나라 생명보험과 투신시장은 수익성과 안정성 보다는 대형재벌사의 브랜드에 영향을 받아 시장점유율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의결권 행사가 남용된다고 하더라도 시장규율에 의해 통제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자. 금융회사의 설립과 관련해 별도의 인가 절차를 두고 대주주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주주의 자격 요건 심사시 대주주의 재무상태, 신용도 등을 고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금융회사가 부실화되는 경우에 적기시정조치를 발동하여 대주주에게 증자 명령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브랜드 가치란 무엇인가? 감독당국이 금융회사의 설립을 인가할 때 대주주의 재무상태나 신용도, 평판 등을 고려하는 이유나 고객이 거래 금융회사를 선택할 때 대주주의 재무상태나 신용도, 평판을 보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해당 금융회사의 상태 뿐 아니라 대주주의 상태가 그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가치란 평판(reputation)의 가치를 말한다. 브랜드 가치란 좋은 평판으로 인해 미래에 보다 좋은 사업기회, 수익기회를 가지게 됨에 따라 형성되는 가치이다. 브랜드 가치가 큰 기업은 그 가치에 흠이 가지 않도록 노력한다.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미래의 보다 큰 수익기회를 잃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고객이 대주주의 브랜드 가치를 보고 거래할 금융회사를 선택하고 브랜드 가치가 높은 대주주는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건전한 상거래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시장규율의 요체이다. 감독 당국이 금융회사의 설립 인가시 대주주의 재무상태나 신용도, 평판 등을 보는 것은 이러한 시장규율의 힘을 정부 규제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규제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을 기다리며 정부의 규제는 그 비용을 발생시킨다. 규제 당국의 운영비와 같은 직접적인 비용도 있고 효율성의 저하와 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비용도 있다. 또 다른 규제 비용의 하나는 시장규율을 약화시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예금보험제도가 예금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여 시장 규율에 의한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 노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덕적 해이와 시장규율의 약화 문제가 예금보험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규제는 그 내용을 불문하고 본래 시장이 스스로 해야 할 것을 정부가 대신하는 것이다. 정부가 대신 해주면 시장은 스스로 규율하는 노력을 소홀히 하게 함으로써 시장규율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감독당국이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규제의 존폐 여부를 검토할 때는 항상 그 규제의 목적이 금융업에 특수한 시스템 리스크 방지 목적인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시스템 리스크 방지 목적인 경우에는 금융업종 간에도 시스템 리스크의 정도가 다르므로 그 다른 정도를 감안한 규제인지를 다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존재하는 시스템 리스크의 정도에 상응하는 적정한 규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만일 규제의 목적이 시스템 리스크의 방지 목적이 아니라면 엄격한 정당성 테스트를 거치도록 해야만 한다. 그 경우 정당성을 테스트하는 한가지 방법은 유사한 규제를 금융업이 아닌 다른 업종에 적용하더라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규제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를 따져보지 않고 규제당국의 일방적인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규제는 납세자 세금에 의존해야 하는 희소한 공적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낭비하거나 규제가 의도하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못하고 전혀 엉뚱한 역작용을 불러온다는 것은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피규제자인 기업이나 소비자 등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합법적인 선택행위 가운데서 가장 최적의 것을 선택하려고 하는 합리적인 경제행위의 주체라는 점을 규제당국은 인식해야 한다. 법으로서 만들어 놓았으니 지키겠지 하는 발상은 안이하다. 철저한 집행이 뒤 따르지 않는 규제는 정책의 자의성 논란을 불러오고, 온갖 부패의 시작이 된다. 규제당국이나 피규제자 모두에게 집행비용(enforcement cost)이 너무 높은 규제는 아무리 일벌백계의 성격을 띠고 있더라고 신뢰성에 문제가 있고, 규제자와 피규제자사이에 재협상(renegotiation)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처음부터 규제는 현실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규제당국은 규제에 대한 철저한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에 따라 규제를 도입해야 하며, 일부 결집력 높은 소수 이익집단의 각종 rent-seeking activity에 포획(capture)되지 않도록 정책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예측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금융규제라고 이러한 규제의 철칙에서 예외일수는 없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