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의 선진화와 노조의 경영참여
	2003-08-26
노사관계의 선진화와 노조의 경영참여 무리한 노조의 경영참여요구 …일자리 지키기 위한건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노조 파업의 특징은 임금 인상과 종업원 후생 등 전통적인 이슈 이외에도 신상품 개발, 사업확장, 공장이전, 외주(外注) 등 핵심 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참여 요구다. 노조의 경영 참여를 선뜻 들어준 현대자동차와 달리,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기업들은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한국네슬레는 KGI증권 등에 이어 올 들어 직장폐쇄를 단행한 다섯 번째 외국인 기업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정부나 일부 학자들도 ‘합의 또는 최소한 협의 수준 이상의 참여가 있어야 노사관계가 선진화된다’고 믿는 데 있다. 예컨대 청와대 관계자는 노조의 경영참가가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경제학자는 재산권 경제이론을 왜곡, ‘손익공유(損益共有) 없는’ 근로자 경영 참가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듣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주한 외국 기업들이 이런 논리를 거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업에서 경영권을 가지는 주체는 수익을 배분할 때 가장 나중에 그 수익을 가져가는 측이다. 가령 채권자는 원금과 이자를 챙겨가고, 협력업체는 대금을 받아가며,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 간다. 그러나 주주는 끝까지 위험부담을 안게 된다. 회사가 잘못되면 마지막에 손실을 고스란히 안게 된다. 이것이 경영권의 본질이다. 문제는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회사 사정이 어찌됐든 임금은 고스란히 가져가겠다는 입장이다. 회사가 어려워지더라도 그 손실과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노(勞)측이 경영에 참가하고 싶다면 위험부담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가령 회사가 어렵다면 자진하여 임금을 절반으로 줄이거나 안 받겠다는 식으로 손실과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노조의 경영권 참가 논의를 보면, 위험부담은 지지 않고 이익은 고스란히 챙겨가면서 경영에는 참가해야 되겠다는 식이다. 이는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이론에도 맞지 않는다. 만일 노측이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면 채권자나 협력업체가 더더욱 경영에 먼저 참가하겠다고 나서도 할말 없는 것이 아닌가. 노조의 경영참여가 기업민주화와 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기업은 영리 조직이므로 기업경영 방식은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 경영자와 경영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경영 투명성 또한 주주와 자본시장이 알아서 할 일이다. 물론 IMF사태 이후 노측이 사측을 불신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그 당시에는 사측보다도 국가 시스템 전체에 문제가 있었다. 노측으로서는 증권 분야 집단소송제, 회계감리제도 강화 등이 곧 입법화될 것이고, 매년 있는 임단협에서 자기 주장을 반영할 수도 있다. 노조의 경영참여가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가져온다는 주장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경영이란 노측이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니다. 노측이 받는 임금은 경영참여와 관계없이 노가 최선을 다할 것을 전제로 주어지는 것이다. 설사 노측이 회사 주식을 일부 보유한다 하더라도 주총을 통해 각자의 경영권을 행사하면 그만이지, 이를 빌미로 노조가 단체로 경영에 직접 참여할 이유는 없다. 노조에서 경영참여를 주장하는 가장 솔직한 이유가 조합원의 일자리 지키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평생직장은 현실성이 없으며, 내 일자리 하나를 지키는 것이 남의 일자리 열 개를 뺏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기업을 노, 사, 협력업체, 채권자, 국세청 등 이해관계자들의 계약관계라고 보면, 이들의 이해가 항상 일치할 수 없다. 상대방의 의도나 행동을 알 수 없으니 노사간의 갈등과 불신은 지극히 당연하며, 대결과 싸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선진적인 노사문제 해결방법은 경영권에 대한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영권의 제도적 확립과 철저한 집행에서 찾아야 한다. 이재선 (홍익대 상경학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3. 8. 2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