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도 사회적 책임 있다
	2003-08-26
노조에도 사회적 책임 있다 마침내 국회는 이번 주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서 주5일 근무제를 확정할 것 같다. 국회가 마련한 개정안은 노사 양측의 주장을 어느 정도 절충한 것이다. 연월차 휴가일수를 15∼25일로 하고 주5일제 시행 시기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내년 7월부터 2008년까지 순차적으로 실시한다. 다만, 20명 미만의 영세 사업장은 2011년까지 시행을 늦추기로 돼 있다. 임금보전에 대해서도 주5일제를 실시하더라도 기존 임금 수준이 줄어들지 않도록 규정했다. 기업에는 실제로 상당한 임금 인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업의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영세 기업들이 이를 감내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그 동안 극한적으로 대립해온 노사관계가 개선될지도 알 수 없다. 노동계는 국회의 개정안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게다가 일부 노조는 구조조정을 반대하고 노동의 경영 참여 및 노조의 정치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 조흥은행, 철도, 금속, 현대차 등 강성 노조의 쟁점은 단순한 임금협상이라기보다 정치 투쟁에 가깝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조가 한 달 넘게 파업을 벌이면서 해외 조립공장들의 가동이 중단되고 수출 물량 손실도 엄청났다. 그 바람에 현대차에 납품하는 군소 부품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몰려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차의 파업은 끝났지만 많은 후유증을 남기게 되었다. 현대차가 과연 노사관계의 개선 없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의 강성 노조들은 투쟁만 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쓰러지고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고생하는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회사가 이익을 냈든 어려움에 처해 있든 대기업의 강성 노조들은 파업을 일삼아 왔다. 아마 경제가 어렵더라도 마음을 굳게 먹고 그들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청년실업자는 늘고 비정규직은 과도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전투적(militant) 노조가 두려워서 투자를 꺼리고 국내 기업들은 견디다 못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다. 앞으로 노조는 극렬한 정치 투쟁에 못지 않게 기업들이 해외로 옮겨가거나 회사를 폐쇄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것이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노조가 일시적으로 임금을 지나치게 올릴 수는 있으나 생산성 증가를 초과하는 임금 상승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는 없다. 노조는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는 있지만 투자나 고용을 늘리게 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들이 정치 논리로 해결될 수는 없다. 노조의 힘은 높은 도덕성과 연대의식에서 나온다. 노조는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기업의 부당한 착취에 맞서서 근로자의 권익을 지키며 그들과 강한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제 노조도 기업에 못지 않게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때가 됐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전체 근로자의 12%에 불과한 노조, 그 가운데서도 일부 강성 노조가 노동 불안을 주도한다. 기업의 착취란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끝없이 벌어지는 노조의 불법·과격 투쟁이 문제다. 근로계층의 끈끈한 연대는 간 데 없고 노노(勞勞)간 갈등만 심화된다. 강성 노조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쟁점으로 들고 나온 것은 굉장한 아이러니다. 결국 노조 대 비노조, 정규직 대 비정규직, 기존 근로자 대 신규 청년 실업자간의 극심한 갈등을 빚어낸 강성 노조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겠다는 것일까. 주5일 근무제가 노동계가 기대하듯이 여가와 복지를 개선하고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 근로시간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으나 노동의 생산성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소득 수준이 향상된 것은 생산성 향상이 근로시간 단축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또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비교해 본 소득 격차는 미국이 유럽연합(EU)보다 약 30% 가량 높다. 양국간 소득 격차의 주요 원인은 미국 근로자가 EU 근로자보다 생산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휴일 수가 적고 주간 근로시간은 길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서 EU의 실업률이 높은 것도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을 낮추는 요인이다. 장기적으로 휴일은 많고 주간 근로시간은 짧으며 생산성은 낮은 데 높은 소득 수준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노조가 투쟁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은 장기적·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주5일제의 성공적인 정착은 무엇보다도 노동 생산성 향상에 달렸다. 생산성 향상만이 근로자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며,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8.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