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 발상의 전환을
	2003-08-11
여성정책, 발상의 전환을 참여정부가 신(新)성장과 도약을 위한 이정표로 ‘2만달러 시대’를 공언했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이 목표치를 제시하면서 여타 사회부문의 절제와 인내를 요구해 왔기 때문에 2만달러 시대 구상에 회의적인 시각과 비판도 만만치 않다. 우리 사회가 ‘잘사는 2만달러 시대’로 가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현 시점에서 참여정부가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다시 회귀하는 건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2만달러 시대 구상보다는 용어 자체에서 파생한 오해가 적지 않은 것 같다. ‘2만달러 시대’를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일례이다. ‘2만달러 시대 구상’은 ‘한국 사회의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성장을 위해 기반을 구축하자’는 함축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 곳곳에 전근대적인 사회문화 의식과 관행, 불합리한 시스템, 대립적인 사회 갈등 등이 사회적 위기는 물론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정표로서 ‘2만달러 시대’는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구상을 실현하는 동력으로서 과학기술, 여성, 동북아 시대, 차세대 전략 산업 등을 꼽는데, 이 가운데 여성은 2만달러 시대로 가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정도에 따라 잠재적 성장률은 3%이상 올라갈 수 있고,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선진국 수준의 사회문화,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위한 여성 인력의 활용 중요성에 관해서는 누차에 걸쳐 논의해 왔으나 구체적인 전략이 부재한 실정이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새로운 사회문화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새로운 여성 정책 전략 수립의 미숙함과 전문성의 부족, 그리고 여성 정책 관계자들의 오랜 관행에서 오는 반복성과 이해 관계 등에 있다. 그러므로 이제 여성적 접근의 패러다임에서 실용적 접근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추진돼온 여성 정책은 모든 내용을 망라하고 있어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가 제시한 양성 평등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이제 백화점식 여성 정책의 나열보다는 핵심적인 여성 정책을 선택하고 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맥락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여성 정책의 근간과 방향, 그리고 내용에 대한 검토와 조정 방향에 대해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보호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5대 사회적 차별 해소에 성(性)이 주요 항목으로 선정돼 있다. 때문에 여성 정책의 전제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사회적 주체로서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넓히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을 전제로 여성정책을 수립·집행할 경우, 여성 스스로 자기 발전을 위한 동력을 갖는 데에 상당한 제약을 갖게 된다. 또, 그로 인해 적극적 능력 개발 기회를 상실하거나 여성 정책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지금까지 추진돼 온 여성정책은 여성 발전에 치중해 국가 발전을 함께 고민하기보다는 국가에 여성의 몫을 요구하는 식으로 추진돼 온 감이 적지 않다. 이는 동등한 사회적 주체로서 여성도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 변화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으며, 때문에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 필요하다. 셋째, 여성 문제와 여성 정책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특정 집단에 국한돼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여성 문제나 여성 정책을 보는 시각은 서로 다를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여성주의적인 담론을 고집하는 것은 여성만의 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사회 발전과의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제 여성 정책은 ‘실리’에 입각해서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입장에 있는, 다양한 시각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넷째, 진정한 양성 평등 사회는 남성에게 가정과 자녀에 대한 책임을 묻고, 여성에게 사회 발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성에게 가정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듯이 여성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보육과 가사 노동 등이 사회적 서비스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여성 정책은 2만달러 시대가 여성의 잠재력 개발과 인력 활용으로 실현되도록 여성 인적자원 개발과 직업의 창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 쟁점 및 정책 생산을 둘러싼 비효율 구조를 극복하고, 객관적이며 생산적인 구조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생물학적 ‘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전문 능력’이 중요하며, 이것이 2만달러 시대로 가는 밑거름이자 초석이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여성 정책의 틀을 짜고, 전문성이 있는 새로운 여성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숙경 (여성개발원 사회문화연구부) 출처 - 문화일보 2003. 8. 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