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의 성패
	2003-08-04
6자회담의 성패 핵문제 해결은 결국 북·미 양자간 협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줄곧 주장해 온 북한이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여하는 6자회담을 7월 31일 전격 수용했다. 물론 북한은 ‘6자회담 틀거리 안에서의 조·미 양자회담’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다자회담 수용은 북핵 문제를 북·미간 쌍무적 문제가 아닌, 주변국 모두와 연관된 다자적 문제로 정의한 미국 부시행정부가 한국 중국 등과 함께 다자회담 수용을 북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결과다. 미국은 그간 북한이 다자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유엔 안보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을 통해 압박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갈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악역’을 자처했다. 중국은 평양과 워싱턴을 왕복하며 다자대화 재개를 위한 ‘중재역’을 자임했다. 한편, 한국은 북핵 해결을 위한 ‘로드맵’,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제공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혜택에 관한 포괄적 리스트를 미국과 일본측에 제의, 이들이 한·미·일 공동의 로드맵 마련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함으로써 북한이 6자회담에 ‘기대’를 갖고 나오도록 도와주는 ‘산파역’을 수행했다. 북·미 제네바 합의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가지고 있는 부시행정부는 경수로의 핵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8월말로 예정된 경수로 주요 부품의 하나인 ‘배수 펌프’ 공급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8월말을 북한과의 다자대화를 모색하는 사실상의 ‘한계선’으로 설정해 놓았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이 시간을 더 끌 경우 대화 재개 없이 경수로 건설이 종결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북한이 그 후에 뒤늦게 사태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키기는 무척 힘들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 입장에서는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중국이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따라서, 직접 러시아를 끌어들여 5자회담이 아닌 6자회담을 ‘제의’함으로써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안전판’을 확보하고, 6자회담 개시후 북·중·러 축을 중심으로 한·미·일 축에 대응하면서 실리를 챙기겠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조만간 6자회담이 개최된다고 가정할 경우 다음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그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첫째, 북한이 6자회담을 통해 핵포기 선언을 하고 검증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에 대한 안전 보장과 더불어 포괄적인 지원에 기초한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기로 결심한다면 6자회담 전망은 매우 밝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6자회담을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 획득을 노린 수단으로 인식한다면, 그리하여 회담을 시간끌기용으로 전락시킬 경우 6자회담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회담이 계속 공전될 경우 부시행정부 내 ‘신보수주의’ 강경파, 이른바 ‘네오콘(neocon)’들은 “외교적 노력을 소진했으므로, 이제 본격적인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네오콘들은 북한이 ‘실수’하길 기다리고 있다. 둘째, 6자회담이 한반도 주변 4강의 ‘반핵 의지’에 힘입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들 중 일부가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기보다는 한반도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 확대에 더 비중을 두거나, 세계 여타 지역에서의 자신들 이익과 한반도 문제를 연계시켜 미국과 모종의 ‘거래’를 도모하려 할 경우 6자회담은 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확고한 리더십이 요망된다. 6자회담이 ‘북중러 대 한미일’의 양극화 구도로 전개될 경우 북한은 틈새를 노려 핵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회담은 의미가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민족공조와 한·미공조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회담이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북한은 북·중·러를 중심축으로 삼아 민족공조를 통해 한국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면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입장과 처신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 어차피 북핵 문제는 북·미간의 문제라는 식의 안이한 인식을 가지거나, 6자회담을 4강에 대한 등거리 외교의 시험장으로 ‘오해’할 경우 한국은 4강 모두로부터 배척받을 수 있다. 한·미·일 공조를 토대로 중국과 러시아의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8.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