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재난관리청 설치
	2003-08-01
표류하는 재난관리청 설치 4개월간 회의만 30여차례…美 국토안보부 본받길 1990년대 성수대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크고 작은 인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체계적 위기관리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작년 5조1500억원에 달하는 재산과 246명의 인명 피해를 낸 태풍 루사가 우리나라를 들이쳤을 때도 재해 현장을 찾은 구호기관들은 재난관리기구의 신설을 강력히 요청했다. 지난 2월 대구지하철 참사 후 국회에서 특위와 상임위들을 통해 이번 사고가 체계적 재난방지시스템 미비로 빚어진 인재라며 정부의 안전불감증을 한목소리로 질타했을 때 재난관리청 설치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3월 4일 국무회의에서 현행 재난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도록 지시했다. 정부는 14개 부처에서 60명을 파견 받아 재난관리 시스템 기획단을 구성, 행정자치부 산하에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기획단은 3월 17일 구성 이후 4개월 동안 토론회 8회, 좌담회 6회, 규제심사위, 정책자문단회의, 관계부처 국장급 및 차관회의 등을 30여 차례 열었으나 아직 구체적 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재난에 대비한 국가안전망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을 잘 살펴봐야 한다. 미국은 9·11 테러 직후 국토안보부 설립을 논의하다, 작년 11월 25일 역사상 가장 크고 막강한 부처인 국토안보부 설립을 확정했고, 올해 3월 공식 출범시켰다. 국토안보부는 연방위기관리청(FEMA)·FBI·해안경비대·국경수비대·이민귀화국(INS)·세관·교통안전국(TSA) 등 22개 연방정부 기관과 17만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초거대 부처로, 연간 360억달러의 예산을 쓰면서 미국을 겨냥한 테러 공격을 예방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재난관리청이 설치돼야만 통합적 재해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 통합관리방식(Integrated Emergency Management System)이란 예방·대비·대응·복구 활동을 종합 관리한다는 의미로, 전체적 대응활동을 조정·통제하는 데 있어 의사 결정의 근원이 된다. 이러한 관리방식은 재해유형에 관계없이 동일한 활동들이 재해 예방·대응·복구 시기에 수행된다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 관리방식으로 평가돼 선진국들에서 채택하고 있다. 통합된 재난관리 조직에는 이재민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신속히 제공할 수 있는 구호 전담 부서가 마련돼야 하며, 자원봉사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관리체계도 갖춰져야 한다. 재해관리 조직은 몇 십년 만에 한 번 올지도 모르는 대형 재해를 위해 평시에 직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을 수 없어서 재해가 발생하면 부족한 인력을 자원봉사자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태풍 루사 때 재해 현장을 찾은 자원 봉사자들이 43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재해봉사 활동의 특성과 현장 적응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실시한 기관이 대한적십자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 이들이 현장에서 복구 활동을 방해하는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로 관리가 안 됐다는 사실이 감사원 결과로도 드러났다. 반면 미국의 경우 국토안보부 소속 EMI(Emergency Management Institute)에서 실시하는 재해구호교육을 매년 40만명이 이수하고 있다. 미국 적십자사 재해구호연수원은 매년 2000여명의 시민에게 재해구호 봉사원 교육을 하고 있다. 장마가 끝났다고 하지만 집중호우는 계속되고, 8~9월에는 태풍이 온다. 인위적 재난도 예고 없이 찾아올 것이다. 한시가 급하다. 22개 기관을 통합한 미국의 국토안보부 출범을 표본 삼아, 정부는 부처 이기주의에 따라 표류하는 재난관리청 설치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 정귀옥 (대한적십자사 사회봉사보건국장) 출처 - 조선일보 2003. 8.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