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勞使모델
	2003-07-28
제3의 勞使모델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가 또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축구가 아니라 이른바 '폴더모델'이라 일컬어지는 네덜란드의 노사관계 모델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모델에 관심을 갖는 것은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의 정착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6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과도기적 무규범과 무질서, 대립과 갈등이 우리 노사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노사관계의 후진성 때문에 국내기업은 해외로 생산공장을 이전하고, 외국기업은 한국투자를 기피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은 좋은 일자리를 외국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사갈등이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켜 1만달러 소득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도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안정되고 협력적이며 규범과 원칙이 바로 선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을 탐색하여 정착시키는 것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네덜란드 모델을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하여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네덜란드 모델에 대한 찬반 양론은 극히 일면적이고 피상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경영계는 마치 네덜란드 모델이 곧 경영참가 모델인 것처럼 이해하고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노동계도 네덜란드 모델이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임금자제를 의미한다고 보고 반대하고 있다. 네덜란드 모델은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서 배울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네덜란드는 1990년대에 노사협력-고성장-저실업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기적은 1982년 '바세나르협약'에서 비롯되었다. 이 협약에서 노사는 권리주장보다는 경제회생을 위한 고통분담을 앞세우고 대타협을 이룬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제고와 임금자제에 합의하고, 기업은 투자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 것이다. 우리가 네덜란드 모델에서 일차적으로 배울 점은 이러한 양보와 협력을 통한 노사공영의 추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모델이 언제나 고성장-저실업을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에는 '네덜란드병'이라 조롱받을 정도로 저성장-고실업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네덜란드 모델 그 자체를 모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민주시대의 새로운 한국적 노사모델을 탐색하는 데 네덜란드 모델의 장점을 취하고 그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실사구시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 모델뿐 아니라 영미 모델에서도 기업경쟁력 강화와 근로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은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실에 적합한 '제3의 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새 노사모델은 먼저 공정한 법과 원칙을 만들고 이를 엄정하게 집행함으로써 노사관계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질서와 규범을 바로 잡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법과 원칙의 정당성 기준은 노와 사의 요구가 아니라 국제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발연대에는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는 대신 개별근로조건은 법적 강제에 의해 과보호한 측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노동기본권을 국제노동기준과 부합하는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한편, 개별근로조건을 현실에 맞게 규정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경직화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민주적 노사관계 관리시스템의 확립도 시급하다. 노동위원회 등 공적조정기구의 예방조정기능을 강화하고, 민간전문가에 의한 사적조정서비스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를 담당할 수 있는 노사관계 전문인력을 양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새 노사모델의 정착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노사정이 네덜란드의 경우처럼 절제와 타협의 미덕을 발휘하여 대타협을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李源德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7.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