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도 실명제를
	2003-07-22
정치자금도 실명제를 정치와 돈,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상호 분리될 수 없는 운명의 공동체이다. 특히 선거 때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후보자들은 선거자금이야말로 자동차의 윤활유와 같아서 선거 때 돈이 없으면 조직이 움직이지 않아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푸념하면서 선거자금 끌어대기에 혈안이 된다. 때문에 뭉칫돈이 필요한 선거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민주정치의 요체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검은돈에 정치를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는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정치자금은 민주주의 비용이며 동시에 정치부패를 조장하는 필요악이라고 부른다. 최근 정치권이 이른바 굿모닝시티 게이트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깨끗하고 돈 적게 드는 선거를 치렀다고 자부심이 대단한 노무현정권이 집권 5개월도 되지 않아 굿모닝시티 게이트로 인해 최악의 풍랑을 맞고 있다. ‘희망 돼지’ 저금통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면서 국민성금에 의한 선거자금을 사용했다고 강조, 도덕성을 최대의 무기로 삼고 있는 참여정부의 정통성이 굿모닝시티 게이트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격랑을 정도(正道)로 잘 헤쳐나가면 순항이 예상되지만 변수가 많아 아직은 장담하기 힘들다. 대통령 후보자는 물론 수많은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 심지어 대학 교수들의 운명까지 하루아침에 바꿔 놓는 대통령 선거는 최대의 선거자금이 사용되므로 돈으로 인한 후유증은 심각하며, 노무현정권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선거가 실시된 이후 계속되는 연례 행사이다. YS와 DJ가 대선자금 등 돈 문제로 결국 아들들을 감옥에 보냈으며, 노무현정권도 출범하자마자 이른바 나라종금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더니 이번에는 굿모닝시티 게이트로 집권당 대표까지 연루되어 휘청거리고 있다. 이런 대선 선거자금 후유증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자금법을 비롯한 정치관계법이 존재하는 한 정치인들은 검은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그리고 돈이 가지고 있는 순환성과 익명성은 정치부패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투명한 정치자금에 의한 정치를 주문하면서 경제인들의 주도로 국회에서 1965년 제정된 정치자금법은 그 동안 13회나 개정했지만 그 때마다 정치인들은 정치자금의 투명성보다는 국민의 혈세인 정당운영 국고보조금이나 선거지원금을 증액시키는 데 열을 올렸다. 현행 정치자금법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맹점은 정치자금 실명제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익명성이란 틈만 있으면 불법으로 거래되어 돈의 위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하는데, 현행 정치자금법은 법규 자체가 정치자금 수입원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불법 정치자금이 유통될 수 있는 여지를 합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일부 정치인들은 검은돈을 가지고 축재를 하다가 과거 한보철강이나 기아자동차 사건 때와 같이 문제가 터지면 정치자금으로 둔갑시켜 법망을 피했으니, 과연 깨끗한 정치가 가능했겠는가. 이번 굿모닝시티 게이트가 터지자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 등 정치권은 물론 중앙선관위, 시민단체, 학계, 각종 언론 등 모두 하나같이 정치자금법의 맹점을 지적하면서 정치자금 실명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YS 때나 DJ 집권 때도 비슷했다. 특히 중앙선관위와 시민단체, 그리고 학계에서는 정치자금 실명제를 포함한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을 분기별 행사 같이 국회에 제안하고 있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국회정치개혁특위는 구성돼 있으나 개점 휴업상태이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 모두 대선자금 공개와 검증을 요구했다. 중앙선관위도 정치자금실명제를 비롯한 정치관계법 개정을 또 제안했다. 국회의원들도 정치관계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직도 이런 정치권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작년 경선 때도 선거자금을 공개하겠다고 후보자들이 말했지만 결국 돈 문제에 비교적 깨끗하다는 김근태 의원만 고해성사를 하여 피해를 보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정치권이 목소리만 높이면서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은 희망돼지 저금통을 계속 자랑하려면 야당과는 관계없이 지난해 경선 비용을 비롯한 모든 정치자금을 하나의 의혹도 없이 국민에게 소상히 밝힘과 동시에 정치자금 실명제 추진에 앞장서는 정도(正道)를 택해야 할 것이다. 김영래 (아주대 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7. 2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