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책 규제완화 병행을
	2003-07-16
경제대책 규제완화 병행을 최근 연초 이래 말도 많던 정부의 경기 종합 대책이 발표됐다. 그 동안 일각에서는 이라크전과 북한 핵 문제 등 지정학적인 불안 요인이 제거되면, 하반기 이후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니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필요하지 않고, 연초 일시적인 경기 둔화는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지난 해 하반기 이후 진행되고 있는 경기의 재침체 현상은 보다 근본적인 경제 시스템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보다 적극적이고 근원적인 경기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경제의 현실을 뒤돌아보자. 한 마디로 외환 위기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 경제의 체질은 취약하기만 하다. 그 동안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하게 시장 친화적인 개혁을 추구해 왔지만, 현재 기업들의 전반적인 경쟁력은 기대에 못 미치고, 금융 시스템의 효율적인 자금 배분 능력도 불구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는 한때 국제 금융가로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외환 위기를 극복한 국가로 칭송 받았던 것일까. 다름 아니라 ‘정부의 역할’과 ‘유동성 확대’가 한국 경제의 성공 스토리를 엮어 낸 것이다. 돌이켜보면, 97년 한국의 외환 위기는 개발 경제 시대 전통 제조업의 과잉 투자가 외환 위기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외환 위기 초기 국제통화기금(IMF)은 ‘고금리’와 ‘긴축 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말도 안 되는 거시 정책을 우리 정부에 강요했으나, 곧바로 ‘저금리’와 ‘재정 확대’로 정책을 전환했다. 인위적인 초고금리 정책에 따라 한때 30% 이상까지 치솟았던 시장금리는 정부의 정책 기조 전환에 힘입어 98년 중반 이후 내림세를 지속하여 한 자릿수로 들어섰고, 이러한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시중 유동성 공급은 급증했다. 정부 재정도 금융 기관의 부실 해소를 위해 100조원 상당의 재정 자금을 투입하고 적자 재정을 꾸려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섰던 것이다. 이 결과, 한국 경제는 정보기술(IT) 투자 붐에 힘입어 3년 만에 외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하반기 들어 미국의 IT거품(버블)이 붕괴되자, 한국 경제는 또다시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 때에도 우리는 금리 인하와 적자 재정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그 동안 낙후됐던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내수 산업의 규제 완화도 병행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소비와 건설업의 호황으로 우리는 지난 2년을 버텨 온 것이다. 이제 IT 버블과 내수 버블마저 붕괴되어 가뜩이나 취약한 한국 경제는 미증유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번 정부의 종합 대책을 점검해 보자. 분명히 5월중 산업 활동 동향이 발표된 이후 정부의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던 듯하다. 당초 정부는 제한적인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을 천명했으나, 이번 하반기 대책에는 경기 회복을 유도하기 위한 적극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의 확대와 더불어 부분적이나마 세제 감면을 시행해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적자 재정도 감수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추경의 대부분이 정부의 IT 투자 확대보다는 사회간접자본(SOC) 부문에 치중돼 있고, 특소세의 경우 디지털 TV보다는 자동차의 감면 폭이 크게 설정됐다는 것이다.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으나 앞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 IT 분야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좀 더 확대됐더라면 산업간 균형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는 기업의 투자 촉진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규제 완화책도 눈에 띈다. 이제 IT 버블도, 내수 버블도 터진 후에 우리 경제를 이끌 성장의 동력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 앞으로 이번 대책에 더하여 내·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 보다 획기적인 투자 유인을 위한 규제 완화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하반기에는 무엇보다도 금융 중개 기능의 복원을 위한 금융 구조조정 노력도 지속돼야 하겠다. 외환 위기 이후 정부의 개입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금융 시스템으로는 한국 경제가 2만달러 소득 시대로 도약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에는 자금 공급이 한 분야에 치우쳐 버블을 일으키는 경기 부양이 되지 않도록 정부의 세심하고 균형 잡힌 정책 전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출처 - 문화일보 2003. 7. 1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