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 가지 않으려면
	2003-07-12
장기불황 가지 않으려면 금융통화위원회가 두 달 만에 다시 콜금리를 0.25%포인트 내렸고, 정부는 추경을 통한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減稅)라는 거시경제정책의 모든 수단을 총동원, 경기부양에 나섰다. 성장률이 3.1%로 낮게 예측되면서 실물경제에 적색등이 켜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기부양 조치가 모르핀 효과는 있으나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 못하고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려가 매우 크다. 경제의 질을 평가하는 주요 변수인 노사문제, 시장투명성, 기업지배구조, 시장규율과 감독규율, 관치금융, 부동산 버블, 도덕적 해이, 역선택적 규제 등 어느 하나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비용을 지급한 것에 비해 제대로 개선된 것이 없다. 오히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노사문제 등으로 경제의 질이 더욱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참여정부의 경제문제 중 김대중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유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수위 기간을 포함해 반 년이 지난 현재, 과거 정권만을 탓하기에는 실사구시적 비전 없이 너무 우왕좌왕하는 정부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우리 경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것이다. 성장 없는 분배는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참여정부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통합과 개혁’이라는 국정지표를 갖고 출발했지만 숱한 시행착오를 범해 오히려 최악의 경제상황을 초래했다. 이제라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한 정부가 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첫째, 집단이기주의를 발동하는 노동쟁의 등 모든 경제·비경제 변수가 시장 친화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각종 이해충돌적 사안에서 공정한 심판자로서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노사관계 모델에서 네덜란드식이나 영미식도 법과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국론이 분열되고 이념 논쟁으로 국가에너지를 낭비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개혁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 스스로 전선(戰線)에 뛰어들지 말고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념적 논쟁 중에는, 마(魔)의 1만달러 소득시대에는 기승을 부리지만 2만달러가 넘는 때에는 자연히 사라지는 것도 많다. 특히 차세대 인적 자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념보다는 실사구시적 정책 입안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경제개혁의 목표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장경제이기 때문에 이념적 논쟁의 여지가 적지만, 비경제 부문의 경우에는 진보라는 이름하에 이념논쟁으로 흐를 개연성이 매우 높으므로 우리 경제가 선진화되기 전까지는 이 부문의 개혁전선을 확대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셋째,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선(先)성장, 후(後)분배’라는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되, 과거 40년 동안의 불균형성장 전략은 가급적 지양하고 균형성장 전략을 통해 사회통합적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여야 한다. 이때 과거 불균형 성장 시 누적된 모든 것을 일거에 균형으로 바꾸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점진적으로 낙후된 부문이 균형을 찾아가는 유연한 국가 균형발전 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 40년간 굽어진 뼈대를 일시에 바로잡고자 압력을 가하면 펴지기도 전에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하에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경제는 개혁적 전문가에게, 비경제는 안정형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현재의 청와대와 내각은 오히려 이와 반대로 출발해서 시행착오가 더 컸던 것 같다. 경제발전을 위해 고언도 서슴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진용이 아니라면 한시라도 빨리 팀을 교체하여야 한다. 우리 경제구조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경기부양적 버블 유도형 대증요법으로 안이하게 대처할 때, 일본형 장기불황의 검은 그림자가 참여정부라는 이름 뒤에 다가올 수 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실련 정책위의장) 출처 - 조선일보 2003. 7. 1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