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의 타협점
	2003-07-11
비정규직 문제의 타협점 현대자동차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 노조결성을 추진하고 자신들을 “사실상 현대차의 비정규 근로자”라 주장하면서 비정규 근로자 문제가 다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정규 근로자 문제가 부각된 것은 최근 비정규 근로자가 너무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임시·일용 근로자의 비중은 95년 41.9%에서 2000년 52.4%로 불과 5년 사이에 10.5%포인트나 급증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비정규 근로자는 정규 근로자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직무를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고용계약만 비정규 형태인 경우가 많다. 정규 근로자에 대한 엄격한 고용보호 때문에 기업이 정규직 업무를 고용조정이 용이한 비정규직으로 대체한 결과인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 자신이 원하지 않는 비자발적 비정규 근로자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다른 나라의 경우 자발적 비정규 근로자의 비중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여성이나 고령자가 가사와 노동을 병행하거나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파트타임 근로를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기업복지에서의 격차도 갈등의 핵심 원인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의하면 부가 급여를 포함한 1인당 노동비용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70%로 나타났다. 이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비정규 근로자를 채용하는 중요한 이유가 인건비 절감으로 나타난 데서도 입증되고 있다. 게다가 파견 근로자와 같이 고용계약 관계를 맺지 않은 사업장에서 일을 하거나,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 등 고용계약이 아닌 사업계약 형태지만 노동에서의 종속성이 일부 인정되는 경우, 적용법규의 모호함 때문에 권리보호의 사각지대에 있거나 사회보험 적용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또한 권리요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 불만이 간헐적으로 폭발, 사회불안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비정규 근로자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사용자들은 비정규 근로자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비정규 근로자 고용은 사용자의 재량이며, 이것이 시장원리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철폐, 즉 비정규 근로자의 정규 근로자화 내지는 정규직과의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요구한다. 결론적으로 노사의 극단적 주장은 해법이 아니다. 사용자의 주장대로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채용할 수 있게 한다면 개별기업에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애사심의 약화와 기업 내 기술축적 저하 때문에 경쟁력 강화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비정규직을 많이 쓰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 기업에서도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다. 국가적으로는 교육·훈련투자 부족 때문에 노동의 질 저하가 일어나고 성장잠재력이 약화될 수 있다. 또한 끊임없는 노사갈등·노노갈등·노정갈등으로 사회혼란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특히 2007년부터 사업장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이러한 갈등은 더욱 집단화되고 증폭될 것이다. 노동조합의 주장대로 된다면 단기적으로는 고용이 안정되고 근로조건이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기업의 대응은 자명하다. 고용규모를 감축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외주·하도급 등 아웃 소싱을 늘릴 것이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일자리는 줄어들고 고용은 더욱 불안해질 우려가 크다. 결국 비정규 근로자 문제의 해결방향은 노동조합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수용하는 대신, 기업은 정규직 직무에 비정규 고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임금과 기업 복지면에서 차별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또한 정부는 직장이동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 근로자를 위한 취업 알선, 사회안전망 확충, 평생직업능력 개발 지원 등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평생직장사회는 무너져가지만, 선진사회와 같이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과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job security)이 조화를 이루는 유연한 안정성(flexicurity), 즉 평생직업 사회를 실현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출처 - 조선일보 2003. 7. 1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