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의 그늘진 뒷거래
	2003-07-11
햇볕정책의 그늘진 뒷거래 북한이 97년부터 작년 9월까지 70여차례에 걸쳐 고폭실험을 실시해왔음이 고영구 국정원장의 국회 보고를 통해 처음 공개적으로 밝혀졌다. 또한 북한의 고폭실험 재개 사실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출범 직후인 98년 4월부터 파악하고 있었다고 함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다. 이로써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공동선언과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 동안 핵무기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동시에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생존전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며, 오히려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방조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북한의 고폭실험과 앞서 제기되었던 농축 우라늄 개발 계획이 햇볕정책이 추진되던 시기에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사실은 햇볕정책의 정책적 실패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며, 이를 승계하고 있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필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최근 특검조사에서 밝혀진 거액의 대북송금사건 역시 햇볕정책의 그늘진 뒷거래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왜 햇볕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한 왜 그런 식의 햇볕정책은 폐기되어야만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간 교류협력과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햇볕정책은 대북송금 사건과 고폭실험 비공개에서 보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칙도 전략도 없이, 그리고 비밀스럽고 부도덕하게 추진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햇볕정책은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무력에 의한 체제보존, 통일전선전략에 의한 대남 접근방식을 포기하도록 했어야 했다. 하지만 실상은 핵에 의한 무력강화만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고통받는 북한 인민들을 구제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어야 할 교류협력정책이 민족공조란 이름하에 북한 엘리트들의 김정일 정권에 대한 신념만을 높여주고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남남갈등과 반미정서 등 각종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햇볕정책의 실패 경험에서 보듯이 남북교류협력과 대북지원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햇볕정책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북한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북한이 합의를 위반하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에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서울과 평양, 그리고 금강산에서 축전을 개최하여 춤추고 노래 부르는 무신경을 연출하였다. 북한의 눈치를 보기 위해 북한이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음에도 6·15 공동선언의 역사성만을 강조한 채 국제사회의 우려에는 애써 눈을 감는 과오를 범하였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시기를 무력 증강에 전념하고 이제 핵동결을 해제하고 핵억지력을 갖추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배경에는 햇볕정책의 책임이 크다. 전임 정부나 현 정부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과로 나타난 현상은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이었다는 사실이다. 유화정책은 약자의 정책이며, 결국은 더 큰 화를 자초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다행히도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과의 차별화를 언급하고 있다. 대북정책 추진 방식을 투명하게 하고 국민적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한다.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하고 통일보다는 평화를 우선하겠다고 한다. 이제 말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3. 7. 1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