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 들의 집단파업
	2003-06-23
‘가진 자’ 들의 집단파업 요즘 외환위기 때보다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영세상인들이나 청년실업자들의 근심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형편이 낫다고 할 수 있는 직장인과 기업인의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나라 경제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는데도 최근 불법파업과 집단이기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어 걱정스럽다. 조흥은행 파업사태는 조만간 철도노조와 양대 노총의 대규모 파업이 잇따를 것이라는 점에서 파국을 향한 예고편에 불과하다.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겠다고 나서고 국가 백년대계를 책임지고 있는 교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미투자협정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스크린 쿼터 문제는 10년이 넘도록 진척이 없고 정부의 대형국책사업은 집단이기주의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대우 받고 가진 자'들이 이러한 혼란을 주도하고 부채질하는 진원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 교사, 은행원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종으로 남아있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대우를 받으면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책임과 의무도 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를 이끌고 지탱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앞장서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한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 근로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명분 없는 집단행동과 불법파업은 더욱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주말에 타결되기는 했지만, 조흥은행 사태만 보더라도 그렇다. 오래전 매각 방침이 결정돼 협상이 진행되어온 것을 막판에 뒤집으려는 것은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명백한 불법파업이다. 더욱이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지분매각을 집단행동으로 저지하는 것은 국가의 정당한 재산처분권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전교조가 집단연가를 내고 2세 교육이라는 신성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나 철도노조가 민영화 철회라는 목적을 달성하고도 또다시 정년보장을 외치며 총파업을 결의한 것도 명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어디까지나 법과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집단 간의 이해갈등이 아무리 크더라도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기능이 작동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가진 자'들이 법과 원칙을 뒤로한 채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기식 집단행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도 물론 오늘날 우리 사회가 선장 없는 난파선이 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한번 내린 결정은 비록 인기를 잃더라도 일관되게 밀고 나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공무원, 교사, 은행원들이 소속집단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국민과 제자, 거래 고객을 생각하는 보다 대승(大乘)적인 자세를 가져주어야만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국민들도 더 이상 방관자적 입장에 머물지 말고 불법적 집단행동에 대해 준엄한 심판자의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 김효성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03. 6.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