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법제정, 규제에 초점을

우리는 로비스트 하면 멀리는 1970년대 미국 워싱턴 정가를 강타했던 코리아게이트의 주역 박동선이나 비교적 최근 '적절치 못한 관계'의 한 당사자인 린다 김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로비는 커튼 뒤에 숨어서 은밀하게 무언가를 주고받는 떳떳하지 못한 활동으로 각인되어 있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 로비 법제화 움직임은 이렇듯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로비활동을 합법화하고 양성화하자는 것이다. 로비법 추진론자들은 로비활동이 엄연히 행해지고 있으며, 때로는 순기능적 측면도 있지만 관련법이 없어 불법적인 것이 되어 음지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로비법을 만들어 부패를 조장하는 로비활동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로비법 제정을 꺼려 하는 사람들은 로비 법제화가 부패를 낳는 로비활동을 억제하는 효과보다는 로비의 양성화로 오히려 극성스러운 로비활동을 조장하여 부작용과 문제점만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반대론자들은 대체로 법 제정의 필요성은 다소 인정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하지만 각종 게이트가 잇따라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련법이 제정되어야 할 필요성은 더해가고 있다.

로비 법제화와 관련하여 우리는 미국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선 1946년 '로비규제법'이 처음 제정되어 오랫동안 시행되다가 1995년 이를 대체하는 전혀 새롭고 보다 정교한 형태의 '로비활동 공개법'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로비활동 공개법'은 로비활동을 미국 헌법에 나와 있는 청원권의 한 유형으로 보장하되, 로비활동의 전모를 백일하에 공개하도록 하면 그 부작용과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입법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

즉 활동의 공개의무는 온당치 못한 로비방식을 제어하는 부패 예방의 효과를 낼 수 있고, 또 상반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손쉽게 관련 정보를 획득하여 대항활동을 조직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형평성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로비공개법은 유형과 규모를 불문하고 모든 형태의 로비활동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로비공개법의 적용은 일정 규모 이상의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로비스트의 활동에 한정된다. 로비스트의 로비활동 시간이 고객을 위한 전체 서비스 활동의 20% 이상인 경우, 로비스트가 받는 대가가 5000달러 이상인 경우, 로비활동에 투입되는 총경비가 2만달러 이상(대가나 경비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5년마다 달라짐)인 경우에만 등록-보고 의무를 지게 된다.

미국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가 법 제정 과정에서 우선 총론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법적 근거를 만들되 부패방지나 정치개혁 차원에서 강력한 '규제'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되 '공개'하는 쪽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어느 쪽으로 가닥을 잡아 나갈 것이냐에 따라 법규의 형식과 내용이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어느 쪽이냐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정치풍토와 행정현실, 일반 국민의 의식수준, 법감정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이 '공개'쪽이라고 해서 우리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로비가 시민적 권리의 한 형태라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우리에게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현 수준에서 입법을 추진한다면 공개에 초점을 맞추어 폐단의 최소화를 기대하는 형태보다는 전문 로비스트들의 활동을 겨냥해 부패 여지를 차단하는 강력한 규제 입법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尹洪根 서울산업대교수.정치학

출처 - 세계일보 2002. 3. 5 시론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