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기업문화가 경제위기로
	2003-06-09
反기업문화가 경제위기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또 다시 우리 경제의 위기를 예측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는 언제나 경기의 순환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문화적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자면, 작금의 경기침체는 새 정부 들어와서 더욱 증폭되어 소용돌이치는 문화적 갈등의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우리가 남보다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일구어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전은 국민 소득의 증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의 축적에는 이에 대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적 과정이 따라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는 문화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이 모든 사회에서 무조건 많이 생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무조건 부를 축적하고자 하지도 않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모든 사회에서 칭송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행위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정부가 백성들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억압했던 정도는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그러니 1960년대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자 이들 신흥 부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당연히 우리 사회의 가장 중심에 놓인 현안으로 대두된다. “왜 저 사람은 부자인데 나는 부자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물음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이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경제활동은 활발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위축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렬한 갈등의 양상은 어쩌면 우리가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지독히도 반(反) 자본주의적이었던 만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화적 반발 또한 거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국민을 기득권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고, 권력에 추종하고 아부한 자와 정의를 위해 싸운 자로 구분하는 것은 빈부(貧富)에 대한 의미 부여의 한 형태다. 이러한 양식의 문화적 갈등은 특히 민주화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반복적으로 심화되어 왔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부자의 부도덕성은 서슬퍼런 성토의 대상이었으며 권력자는 늘 개혁을 약속했다. 그때마다 재벌 총수들은 사재(私財)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해야만 했다. 그런데 기업에 대한 적대감이 아무리 크더라도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은 국가경제의 주체였다. 이는 아무리 도덕적, 윤리적 사회건설을 강조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를 위하여’라는 민족주의적 명분 하에서만 대기업은 존속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처럼 국제 경쟁에 나가서 이기고 돌아오는 기업가, 무역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으로서의 기업가, 그리고 사리사욕없이 전 재산을 사회에 바치는 기업가를 우리 사회는 꿈꾸어왔다. 만약 우리가 앞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원한다면 우리 모두가 누리고 안주해 왔던 민족주의적 경제모델이 자본이 국가간의 경계를 뚫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이 시대에 어울리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IMF 위기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던 게임의 규칙이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도 하다. 국민소득 1만달러가 10년째 오르지 못하고 있는 문턱인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문화적 의미의 체계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 잘 살고자 하며, 무엇이 잘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묻지 않은 채, 오로지 애국적 의미만을 강조하는 경제발전 모델은 이제 그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김은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문화인류학) 출처 - 조선일보 2003. 6. 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