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특검 흔들지 말라
2003-06-06
정치권은 특검 흔들지 말라 일파만파로 파장이 커지던 대북송금 문제가 특검수사에 맡겨진 후에도 이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3일 특검수사 방향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의 성명이 나오면서 특검수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특검수사가 자칫 정치권의 외압에 의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애초에 대북송금의 문제를 검찰이 해결하지 못하고 특검에 맡기게 된 것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였다.비록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민주당이 계속 집권하게 된 상황에서 검찰이 대북송금과 관련된 문제를 정치권력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고, 그 수사 결과의 객관성을 야당과 국민이 신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여야 합의에 의해 특검법을 제정하고 특검수사에 맡긴 것이다. 그런데 특검수사가 50일 정도 진행되면서 구체적인 수사 결과의 윤곽이 드러날 시점이 가까워지자 다시금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특검수사가 어느 누구도 언급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한 권위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특검수사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특검(법)의 취지에 부합되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만일 특검수사의 결과가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에 유리 또는 불리한 방향으로 나올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특검수사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특검법의 기초가 되었던 합의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특검제도의 기본취지를 망각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검법을 제정하고 특검수사를 시작했던 것은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그에 대한 정확한 법적 판단의 기초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최종적인 법판단은 사법부의 몫이지만, 그 전제는 공정한 수사를 통한 사실관계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국회의원들은 특검수사에 대해서 “진상규명보다는 실정법의 잣대를 일방주의적으로 앞세워 사법 처리에 주력하고 있어 실망과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실정법의 제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의원으로서 실정법의 잣대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우려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는 입법부로서 실정법의 제정을 담당하고 있는데, 국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실정법의 잣대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대북송금 문제가 민족 화해 또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많은 국민도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제되는 것은 송금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합법적이었는지, 또 왜 그러한 사실을 국민에게 비밀로 했는지에 있다고 할 것이다. 대북송금 이외에도 그동안 북한에 대한 각종의 경제적 지원은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대북송금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그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 때문인 것이다. 그밖에도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점이 많다. 과연 대북송금의 정확한 액수가 얼마이며, 무엇을 위해 어떤 절차를 거쳐서 송금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위법행위가 있었는지도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물론 대북송금을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잘못된 태도일 수 있다. 주장되는 바와 같이 그것이 남북한 경제협력 사업의 일환이었고,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평화 비용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국민들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할 수 있는가. 특검수사는 정치권의 합의에 의해 시작됐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특검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수사가 그러하지만, 특히 특검수사는 그 객관성과 공정성이 생명이다. 따라서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그에 대한 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특검이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는 없으며, 내려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에 대해 고도의 정치성 때문에 사법적 판단이 곤란한 사항이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사법부에서 통치행위로 인정하여 법적 판단을 배제하는 것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통치권자의 주장만으로 특정한 행위가 통치행위로 인정된다는 것은 권력 분립의 기본에 반하는 것이다. 통치행위인지의 여부를 주장하여 수사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통치행위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단 정치적 합의를 통해 특검법이 제정됐으면, 그 법률은 입법자인 국회의원 스스로를 구속한다. 자신이 제정한 법률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구속력은 특검수사에 대한 존중과 협조로 연결돼야 한다. 일부 정치권에서 주장되는 것처럼 특검법의 협상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거나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했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특검법 및 특검수사에 대한 존중 의무를 약화시킬 수는 없다는 점도 아울러 강조돼야 할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헌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6. 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