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期 불황에 대비해야
	2003-05-26
長期 불황에 대비해야 우리 경제가 밑둥치 부터 흔들리면서 경제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우려했던 대로 3%대로 떨어졌다. 2분기 성장률은 더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우리가 지향해 가야할 경제공동체의 근간은 대립과 갈등, 편가르기로 심한 균열상을 보이고 있다.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한국 경제의 시계가 이정표 없이 한없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경제가 왜, 어느 정도 수면 밑으로 잠기고 있는지에 대한 정부의 진단과 대응시스템이 고장났다는 점이다. 요즘의 정부는, 정부 스스로 경제기강과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모습으로 국민들 눈에 비춰지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정부의 조정실패(Coordination failure)가 더 이상 반복돼서 안된다는 것이다. 경제는 시장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어야 한다. 때문에 경제정책은 경제주체들이 시장 속에서 비전과 예측성을 갖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조정자로서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며, 그 근본은 정부의 균형감각이다. 최근 우리 경제의 침체가 단순히 지표상의 후퇴가 아닌 위기국면으로 진단되고 있는 측면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소비와 투자가 계속 감소되고 있다. 신용불량자 급증과 환율불안 등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잠복된 채 외국인 투자가 발길을 돌리고 있다. 그나마 버팀목이 돼왔던 수출과 정부 재정력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조정력은 고장나 있고, 정책대응의 방향키는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이 점점 더 구체성을 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 이유는 경제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지난 수년간 경기부양 후 짧은 반등과 침체 속에서 경제불안의 함정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에 따른 경기 반등력(反騰力)은 점점 약화되고 있고, 경기반등 기간도 짧아지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의 장기침체 국면 때 그랬듯이 대응책의 빈곤과 고갈이다. 조세·재정지출·금리 등 단기적인 경기대응 정책이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미 경제불안이 만성화된 경제체질에 대해 원인 치료는 하지 않고 섣부른 증상치료만 백화점식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장기침체로 빠져들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그 위기 극복책은 무엇보다 경제리더십을 바로 세우는 데서부터 출발할 것을 제안한다. 신뢰받는 경제리더십은 인적 성향이나 말이 아닌 법과 원칙에 의한 일관된 잣대를 실천해 가는 데서 나온다. 리더십의 원천은 청와대나 장관이 아닌 법과 원칙에 있다. 다음으로 경제정책은 경기부양책과 함께 경제체력 보강이란 균형된 지렛대 위에 기본방향을 두어야 한다. 성장률 둔화와 실업 문제를 완충시킬 경기부양책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검토하는 것처럼 추경예산에 의한 정부지출 증대 보다는, 소득세율 구간 조정과 법인세율 인하 등 민간 소비와 투자에 직접 유인책이 될 수 있는 정책수단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시에 기술력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기초체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과감한 구조조정이 동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경제 행위자들이 기(氣)를 잃지 않고 활력이 솟아나게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경제문화를 조성해 가야 한다. 규제가 아닌 조정, 편가르기가 아닌 상생(相生)과 시너지형 문화를 경제정책에 담아내야 할 것이다. 지금껏 되풀이되어 온 집권 초기의 ‘색깔 내기’식 경제운영에서 정책 위주의 사회적 신뢰를 축적해 가는 경제운영 체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는 지금 경제위기 국면을 장기 경제침체의 관점에서 점검하고 대비해야 할 기로에 서 있음을 인식하기 바란다. 김준영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3. 5. 2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