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 인정과 언론 수준
	2003-05-22
오보 인정과 언론 수준 요즘 3대 언론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영국·프랑스에서 언론 이슈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 조작 및 표절 사건, BBC와 대표적 보수 신문 텔레그래프 사이의 공정보도 논쟁, 르몽드의 전직 기자들이 제기한 르몽드 경영진 ‘전횡’ 논란 등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사례들이다. 美 권위지들 사과·정정등 철저 이중 뉴욕타임스 사례는 최근 ‘북한 길재경 부부장 망명설’ 오보 소동을 벌였던 우리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듯 싶다. 뉴욕타임스는 5월11일자 일요판 신문에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A4 용지 15쪽에 달하는 장문의 정정 기사를 내보냈다.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기사 조작과 표절 행위에 대해 독자들을 상대로 정중하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는 기사였다. 많은 독자들은 “뉴욕타임스도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는가?”라고 놀랐을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룬 국내외 대부분의 언론 보도 역시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러나 필자는 ‘실수를 솔직하게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뉴욕타임스의 용기’에 부러움이 앞선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언론 보도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권위있는 언론일수록 그렇다. 뉴욕타임스의 솔직하고 대대적인 사과 보도는 언론의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언론은 엄격한 의미에서 오보를 전제로 한 작업이다. 대부분의 보도 대상은 끊임없이 유동한다. 이를 보도하는 시점인 마감시간에 맞춰 기자의 심상에 비친 모습을 수용자에게 전해야 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100% 진실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못을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하게 자기 반성을 하는 것은 권위있는 언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뉴욕타임스는 1981년 12월에도 프리랜서인 크리스토퍼 존스 기자가 수년째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캄보디아에 들어가 크메르 루지 게릴라 지도자를 만나 인터뷰를 한 것처럼 보도했다가 2개월 뒤 워싱턴포스트의 폭로로 허위로 밝혀지자 크게 사과한 적이 있다. 오보 사례의 전범처럼 전해져오고 있는 사례는 80년 9월 워싱턴포스트의 흑인 여기자 자넷 쿠크의 ‘지미의 세계’다. 기사 조작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워싱턴포스트 사건은 이번 뉴욕타임스 사건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이 기사로 ‘언론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다가 허위 기사로 밝혀진 뒤 수상이 취소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사장은 “우리의 보도가 옳을 때 우리는 그 편에 서지만 보도가 옳지 않을 때는 우리는 옳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사과했다. 다음날 사설은 “우리는 사과합니다”로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사건을 옴부즈만 빌 그린에게 의뢰해 객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그린의 조사 결과는 1면에서부터 3쪽 반에 걸쳐 게재됐다. 73년 닉슨의 하야를 몰고 왔던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가 워싱턴의 한 지역신문을 일약 세계적인 신문으로 부각시켰다면 8년 후 ‘지미의 세계’라는 세기적인 오보 사건에 대한 솔직한 사과와 정정 보도는 이 신문을 진정한 세계적 권위지로 거듭나게 했다. 오보 관련 한국상황 돌아봐야 우리 신문들도 너나 없이 권위지를 지향하겠다고 수없이 약속한다. 하지만 오보를 스스로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져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의 눈도 매섭게 성장했다. 취재원들도 크게 달라졌다. 정정 보도와 반론 보도, 나아가 민·형사상의 소송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뉴스원과 독자들은 기자의 보도 내용에 대한 견해나 입장 차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사실적(factual) 오보를 넘어 주관적(subjective) 영역에까지 오보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오보를 막는데는 무엇보다 기자의 윤리의식이 선행돼야 하지만 예방을 위한 내·외부 기제의 대대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옴부즈만 제도와 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언론계의 자율적 기구인 신문윤리위원회는 보완할 점이 없는지를 차제에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오보와 관련해 좋은 기능을 하고 있는 중재위원회도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방송발전기금에만 의존하고 있는 경직된 예산구조로는 설립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최광범 (한국언로재단 조사분석팀장) 출처 - 경향신문 2003. 5.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