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품은 독성이다
	2003-05-22
부동산 거품은 독성이다 불경기의 찬바람 속에서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경제는 죽을 쑤고 있는데, 그래서 증시는 비실거리고, 수출은 안되고, 소비는 위축되고, 기업은 설비투자를 기피하고 있어 상당수의 경제 전문가는 우리 경제가 디플레의 늪에 빠져간다고 우려하고 있는데, 왜 하필 집값이 뛰는가? 불황의 고통 속에서 오직 부동산만 이상 활기를 띠고 있다. 계층·지역 불균형 갈수록 커져 아무래도 요즘의 집값 파동은 정상적이 아니다. 원인을 찾아보면 충청도 지역은 행정 신수도에 대한 기대감이 거품으로 나타난 것이고, 강남의 집값은 재건축으로 인한 횡재수가 엇물려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재건축 기대에 따라 수도권 주변으로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른 시장원리 탓이라기보다 다분히 정책 실패의 틈서리에서 가수요가 춤추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강남지역에서만 집값이 50% 이상 올랐다. 특히 바람이 특정지역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계층 간의 불만이나 국민의 정책 불신의 도가 깊다. 그래서 마땅한 처방전을 찾기도 쉽지 않다. 불길을 잡겠다고, 정부는 어찌 보면 사후약방문 같은 몇 가지 긴급대책을 내놓았다.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고, 부동산 과표를 인상하고, 두 채 이상의 주택 소유자에 대한 양도세를 강화하고, 분양권 거래를 제한했다. 부동산 대책으로는 단골 메뉴가 모두 동원됐다. 여기에 더하여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김포와 파주에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동시에 정부는 바닥을 기고 있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대책도 내놓고 있다. 우선 한은이 콜금리를 인하했고, 이어 수조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한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불을 끄고 한쪽에서는 불을 지피는 것이다. 예전과는 문제의 양상도 다르고 처방도 달랐다. 과거의 경기부양은 으레 부동산에서부터였다. 경기가 꺾이면 부동산 거래가 중단되고 집값도 처졌다.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건설 회사들은 미수금 압박을 받았다. 그래서 경기 부양책으로 대개는 돈을 풀고 분양권 거래를 자유화시켜 적당히 투기를 조장해 왔다. 그래서 경기 부양 때마다 집값은 뛰었다. 요즘의 경제 불황은 다분히 복합적이다. 새 정부의 무능과 정책에 따른 불안, 북핵과 이로 인한 국론분열, 이를 틈탄 노동계의 반격, 외국 투자가들의 눈치보기 등 이 같은 변수에 우리 경제인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랴. 부동산 투기는 어쩌면 이 같은 불확실성에 대한 반란인 것이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떠도는 시중 부동자금이 믿을 곳이라고는 '부동산 불패' 신화뿐인 것이다. 집값을 안정시키면서 경기를 살리는 묘수가 없을까? 금리인하는 부동산으로의 자금 유입을 더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 이후의 저금리 정책 때문에 시중의 자금은 계속 부동산 언저리에서 떠돌았다. 여기에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고 추경에 의한 투자를 늘리면 당연히 건설업계가 들썩이고, 이어서 부동산을 더 부채질할 우려가 크다. 정부는 행여 부동산에 대한 대응이 처진 경제를 더욱 위축시킬까 우려하는 것 같다. 뿔을 고친다고 소를 죽여서도 안되고, 암세포를 죽인다고 환자를 죽여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부동산의 이상 징후는 그렇게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이미 거품이 쌓였고, 그 거품은 독성이다. 정부가 올린 재건축 프리미엄 충청도지역이나 신도시로 발표된 김포.파주지역의 바람은 개발이익에 대한 환수제도가 미흡한 탓이다. 그리고 강남과 수도권의 재건축 바람 역시 무원칙한 재건축제도 탓이다. 재건축으로 인한 프리미엄은 정부가 용적률을 높게 허용해준 탓에 형성된 것이다. 강남의 거의 모든 아파트가 이 같은 프리미엄을 기대하고 있다. 항상 개발의 바람만 불어도 부동산값이 들먹이고 악성투기에 따라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근본적 제도의 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은 '뒷북'이라도 최근의 악성 투기에 대해서는 세무행정, 분양가 규제 등을 통해 집값을 연착륙시켜야 한다.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이 부동산 거품을 부풀려서는 안된다. 행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빈손이 될 수도 있다. 李建榮 (단국대 교수/ 전 국토연구원장) 출처 - 중앙일보 2003. 5.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