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保 시대변화 못따른다
	2003-05-15
健保 시대변화 못따른다 의료보험의 목적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있다. 지금으로부터 4반세기 전에 우리는 전국민이 가입하는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보험성과 형평을 증진하는 사회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건강보험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돌아보자. 무엇보다도 국민의 의료 이용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 건강 수준이 증진되고 있는가. 의료 이용자들과 의료 공급자들이 건강보험 제도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러나 이들 물음에 대한 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의료 이용자도 의료 공급자도 모두 불만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위기를 맞은 건강보험 재정은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과 담배부담금 신설로 급한 불을 끈 바 있지만 안정세로 돌아섰다는 보장은 없다. 사실상 국민의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 이용을 지원해야 할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소액 경증 의료는 큰 경제적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으나 우선순위가 높은 중증 의료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본인부담률에다 급여외 서비스가 많고 전문의에 의한 선택진료 역시 급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보아 전체 의료비의 약 2분의 1 또는 그 이상을 환자 본인이 평소의 저축이나 빚을 내어 부담해야만 하는 제도 아래에서 비록 착실한 중산층에 속하는 환자일지라도 의료 빈민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또한 국민은 의료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닫혀 있는 환경에서 의사의 지시와 처방을 조건없이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다. 환자의 알 권리는 실종되어 진료 방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다음 환자의 동의를 구하는 ‘인폼드 컨센트(informed consent)’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최선의 증거를 토대로 진료하는 행위(EBM)에 대한 공론화도 여의치 않다. 문제의 심각성은, 보통감기의 경우 미국에서는 진단만 할 뿐 약도 처방하지 않고 주사도 놓아주지 않으나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항생제가 들어가는 약 처방과 함께 주사를 놓아주는 행위가 관행화돼 있다는 데 있다. 어릴 때부터 내성이 강한 약을 수시로 복용할 경우 건강에 유해함은 물론이며 설상가상으로 이와 같이 잘못된 의료 관행이 의료비 앙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보건 당국은 재정 위기는 보험료 인상과 국고 지원 증대로 풀어 갈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건강보험의 완전 통합이나 건강보험료의 통합 부과를 우선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본연의 기능을 못하고 있음은 물론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건강보험의 성격이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 설정, 정책 수립의 투명성 등의 측면에서 난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에 의료보험 통합의 모델을 제공해준 바 있는 대만의 경우 단일 의료보험이 상대적으로 행정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거대 독점 기구가 지닌 신축성 부재, 경쟁의 결여에 따른 유연성 부족으로 재정 위기에 쉽게 노출되는 약점이 있다고 시인한다. 그러면서 총액지불제, 건당지불제 등을 채택하여 의료비 지불 제도를 개선하고, 개인별 의료 계정을 개설하여 국민 스스로 돕도록 정부가 협력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어 우리와 좋은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영업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고 보이지만 선진국들조차 난제로 생각하고 있는 이 사안에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 결과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오히려 독일의 경우처럼 저소득층과 고위험 계층을 대상으로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조항을 신설, 의료 취약 계층을 확실히 지원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보건 당국은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강보험이 어떤 것인지 공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한 다음 투명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정책실명제를 실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 분업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한 사회적 갈등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권순원 (덕성여대 보건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5.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