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바로 세워라
	2003-05-14
원칙을 바로 세워라 화물연대의 총파업 결정으로 사상 최대의 물류대란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 10월 이후 진행된 화물연대의 운송요금 인상요구가 이처럼 파국으로 치달을 때까지 정부는 두 손을 놓고 있었다. 대통령조차 TV를 통해서 문제를 인식할 정도로 제때 보고받지 못했고, 관계 장관들 중 누구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같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아예 없거나 작동불능 상태가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이러한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화물연대의 파업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의 교육현장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전교조와 교장단의 대립과 갈등도 별 것 아닐 수 있었던 문제가 정부의 인식부족과 대응정책의 부재 속에서 국가적 위기로 발전한 대표적 사례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없이 집권세력의 밀실정책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념적 갈등의 장으로 만들어버린 햇볕정책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면서 국민들의 요구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는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거부할 것은 거부해야 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부는 사회 불만세력의 요구를 뒷거래를 통해 수용함으로써 무마시켜 왔다. 그에 따라 국민들은 집단행동을 통해 강하게 요구하면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정부는 사스전담병원 하나도 지정하지 못하고, 화장장을 비롯한 혐오시설 설치계획은 사사건건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백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작은 정부'도 위기관리시스템 문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이번 사태와 같은 인위적 위기도 언제 어느 곳에서 발생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국가적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 즉 중첩된 조직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동안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다보니 정부조직은 매우 타이트해졌고, 어느 한 부분이 제 역할을 못하면 시스템 전체가 다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우리 사회의 법과 원칙들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과연 이들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하고 투명한 원칙들인가.시대에 뒤떨어지거나 현실과 다른 법의 집행을 강요함으로써 국민적 저항을 유발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따져봐야 한다. 다음으로 집권층과 국가관리자들이 국민들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로마가 공화정과 제정을 거치면서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지배계급의 도덕적 정당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위기관리체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국민들도 국가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집단이기주의가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법과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내 권리를 주장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정부는 위기를 조기에 인식하여 이를 관리하고 해소하기 위한 위기관리시스템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의 이러한 대책은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지만 작금의 상황은 한두가지 제도개선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 근본 원인이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와 공정하고 투명한 원칙의 부재에 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바로 세우고 이를 지키려는 강력한 정치적 결단이 없이는 어떤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洪性桀 (국민대 행정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5. 1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