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익명성 문제없나
	2003-04-16
인터넷 익명성 문제없나 "공적 토론 가로막는 욕설.허위사실 유포-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 자유 아니다" 인터넷 이용자수 세계5위,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는 활동적인 네티즌의 수 세계 4위,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인구 1백명당 17.2명으로 세계 1위.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란 사실을 말해 주는 통계수치 들이다. 문자의 발명으로부터 시작해 종이.인쇄술.전화.텔레비전.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발달은 지난 5천여년에 걸쳐 이어져 왔다.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은 그 이전의 어떤 매체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전의 매체에서는 사적인 성격과 공적인 성격이 확연하게 구분됐던 데 비해 인터넷은 이것이 혼재돼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인터넷 공적책임 어디까지인가 편지나 전화는 개인 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의사 소통하는 사적인 매체다. 사적인 매체는 그 영향력 역시 사적 영역에 국한된다. 따라서 당사자 이외의 어느 누구로부터도 내용에 대해 간섭받지 않는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이른바 대중매체는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를 유통하고 그 결과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적인 매체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고 규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매체의 공적 책임은 매체의 공적 영향력에 비례한다. 인터넷은 개인과 개인이 의사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사적인 통신 공간인 동시에 불특정 다수에게 방대한 정보가 유통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의견교환과 토론이 이뤄지며 여론을 형성하는 공적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인터넷의 공적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요즘 거론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 문제의 본질 역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공적 책임의 한계 문제로 집약된다. 인터넷 실명제를 지지하는 입장은 인터넷이 사적 매체에 머물지 않고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적 매체로서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고 실명제는 그런 책임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입장은 익명성이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다양한 의견의 제시와 활발한 토론을 가능하게 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익명의 세계는 실명 세계의 규범과 규제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위계로부터 평등할 수 있어 실명의 세계보다 솔직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익명성이 표현의 자유 취지에 부합되는 측면이 있다. 표현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자유와 책임의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두 주장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 실명제 찬반의 논의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가에 관한 선택의 문제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 범위에 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 이유는 표현의 자유가 다른 민주주의 기본 가치와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음란한 표현, 욕설, 모욕적 언사, 허위사실 유포 등은 타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하기도 하고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충분한 공적 토론에 기여하지도 못한다. 이와 관련해 표현이 갖는 사회적 유용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까지 무한정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표현의 자유 이념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서구 국가들에서조차 우세한 듯하다. 즉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상의 공개시장 기능 살려야 인터넷은 누구나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상의 공개시장 기능을 수행하고, 공적 토론이 가능한 최적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익명의 무절제한 표현의 해악이 많은 사람을 공론의 장 밖으로 내 모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인터넷은 이미 사상의 공개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표현의 자유의 명분도 함께 잃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공론의 장으로서의 인터넷 공간의 기능을 위축시키는 것이다. 실명제가 인터넷 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면 익명의 무절제한 표현 역시 인터넷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상정해야 할 것이다. 이경자 (경희대 언론정보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3. 4. 1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