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 해독법
	2003-03-25
이라크戰 해독법 미국의 첨단 미사일들이 날아들면서 천년고도 바그다드에는 연일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바그다드에는 일상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기와 수돗물이 나오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 여느 전쟁 같으면 맨 먼저 파괴됐어야 할 발전소와 방송국, 급수시설 등이 멀쩡하다는 얘기다. 첨단무기를 등에 업은 미국과 반전여론을 업고 있는 이라크와의 전쟁이 그려내는 묘한 모습들이다. 이라크 전쟁을 올바로 해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논리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탐하여 명분없는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난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 등에만 석유개발권을 주고 있는 후세인 정권을 방치하다가는 미국의 석유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좁은 시야에서 나온 분석이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승리와 함께 도전세력이 없는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했고, 이후 미국 중심적 국제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을 대외정책의 최대과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고 테러세력을 제압하는 것은 당연한 급선무이다. 석유문제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 속의 작은 그림일 뿐이다.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건설을 위해 소련이 떠난 중앙아시아와 향후 석유생산 중심지로 부상할 카스피해 연안 그리고 중동을 잇는 광대한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그림에서 본다면 핵무기를 개발하고 반미적 범이슬람주의를 부추기면서 지역의 강자로 떠오르려 했던 후세인은 반드시 미국과 부딪치게 되어 있다. 미국이 '불량국가들(Rogue States)'에 대해 강력한 압박정책을 펼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설명이 된다. 미국이 거대한 세계구상과 압도적 힘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느긋한 것은 아니다. 개전명분 문제를 지닌 미국으로서는 반전여론이 최대의 적이며, 특히 미국내 반전여론과 이슬람권의 반미정서 확산이 가장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미국은 후세인 정권의 무기사찰 기만과 인권말살,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테러사용 가능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석연치 않다. 1991년 걸프전 때와는 달리 이번엔 이라크의 침공행위가 없었을 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의 동의도 얻지 못했다. 미국이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반전여론과 직접 관련이 있다. 발전소와 방송국을 폭격하지 않는 것은 비군사 시설이라는 점도 있지만 홍보전이나 심리전을 통해 조기에 이라크의 항복을 얻어내 무혈승리를 거두고자 하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장기전으로 가져가면서 반전여론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이라크와 속전속결을 원하는 미국의 머리싸움이 볼 만하다. 혹자들은 기후와 미군 사상자 발생, 모래바람, 시가전 및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 등이 전쟁의 교착을 가져올 변수로 꼽고 있으나 미국이 과연 호락호락하겠는가. 기후조건의 악화나 사상자 발생은 미국의 속전속결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이라크가 본격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 주장해 왔던 사찰기만을 증명하는 것이 되어 동정을 얻는 데 불리할 수 있으며 미국의 초토화작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라크전쟁은 한국에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패권적인 세계구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고전해야 한다든가 명분이 부족한 전쟁이므로 파병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단순논리가 지배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한미관계 회복이 급선무이고 그것이 향후 북핵문제 해결에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다. 金泰宇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3. 3. 25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