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헌법존중을
	2003-03-21
정부는 헌법존중을 새 정부는 참여정부를 표방했다. 참여정부란 국민이 한낱 정치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도 국정운영에 관해 대화하고 협상하며 정책결정에도 참여하여 진정한 주권자로서 주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며, 정부의 국정 운영을 지속적으로 감시해 가는 정부를 가리킨다.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 민주주의의 제1단계에서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국민의 주권의사를 대표했다. 주권자인 국민 모두가 직접 민주정치를 할 수는 없었으므로 대표들을 뽑아 그들로 하여금 국민의 주권을 대신 행사하게 했기 때문에 당시 의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은 곧 국민의 주권의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됐고, 여기에 대해 위헌심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국민의 의사와 대표의 의사가 늘 똑같은 것은 아니다. 선거 때가 되면 의원들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굽실거리지만 한번 의원에 당선되고 나면 국민의 뜻에 반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등 의원들에 대한 자질 시비도 그치지 않아 국민과 의회의 동일성은 옅어져 버렸다. 민주주의의 제2단계에서는 국민의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부의 역할이 증대됐다. 경제 성장에 힘입어 국민은 복지국가의 건설을 염원하게 됐고, 복지국가의 건설에 대한 기대는 말만 많고 비효율적으로 비치기 시작한 의회보다는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효율적인 조직을 갖춘 행정부의 기술관료들에게 주어졌다. 행정국가 현상은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났고, 프랑스 제5공화국과 같이 헌법으로까지 뒷받침되는 강력한 행정국가가 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맞아 거대한 행정부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고, 복지국가 이론은 퇴조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작은 정부’가 선호되면서 실업 문제의 해결과 안전 보장, 환경 문제, 지방 분권 등을 비롯한 당면 과제의 해결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라는 제3단계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국민들이 직접, 언론과 인터넷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자신의 주권 의사를 표현하고 있고, 시민단체를 통한 감시와 의사표현도 활발하다. 또 법적으로는 이미 국민이 국가정책의 변경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제도는 정착 단계에 이르렀고, 국민이 직접 행정과정에 참여하는 행정절차법도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을 지키게 하는 헌법재판제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특히, 국민은 국회가 만든 법률이나 국가기관의 공권력 행사로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생각할 때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 국회나 다른 국가기관의 위헌 행위 여부를 심판하게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국민은 헌법재판소를 동원, 국민의 주권 의사를 집약하고 있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의회나 행정기관이 침해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침해할 경우에는 가차 없이 위헌결정을 내리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인류의 이상이었던 직접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기본권 보장은 국민의 합의로 마련된 헌법이라는 잣대에 맞추어 판단하는 헌법재판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으며, 국회가 제정한 법률도 헌법의 한도 안에서만 유효하다. 이제는 국민 대표들이나 행정기술관료의 뜻보다는 국민의 뜻이 우월함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이제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르렀다. 참여정부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이 국정 운영을 직접 감시해야 하고, 이 감시의 법적인 최고 수단이 헌법재판이다. 그러나 아직도 헌법을 지키고 실천하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부족하다. 1988년 9월 헌법재판소가 창설된 이래 지난해 말까지 각종 위헌결정이 난 법령 총 273개 중 동성동본 금혼 조항 등 48개 법령이 아직 개정되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에서는 국민이나 국가기관이나 모두가 헌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더욱 존중하고 실행해야 한다. 아울러 다음부터는 대통령 취임선서에서도 왼손을 헌법전 위에 올려 놓고, 오른손을 들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언합니다”라고 취임선서를 함으로써 헌법의 존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광윤 (성균관대 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3. 2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