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근절해야
	2003-03-17
분식회계 근절해야 분식(粉飾)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보다 좋게 보이도록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다. 신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우리 경제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다. 이라크 전쟁위기로 인한 전세계적인 경제불안, 북핵위험으로 인한 컨추리 리스크(국가위험), 가구당 3000만원에 육박한 총 439조원의 가계부채급증 등 3각 파고가 우리를 힘들게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참여정부가 들어서자마자 ㈜SK글로벌의 1조5500억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가 우리 경제를 강타하여 최악의 신뢰위기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시장은 우려하고 있다. 주가폭락과 환율급등, 외평채 가산금리급등, 채권펀드투자자 대량환매 등 금융시장은 지난 한 주 내내 교란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정부의 강력한 직접개입으로 주말부터 주식과 채권, 외환시장에서의 교란은 다소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의 대책이다. 이미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는 식으로 지난 두달 동안 인수위가 발표한 개혁정책에 대해 불안과 불만이 많던 재계는 SK사건을 계기로 경기침체와 시장불안이 흡사 설익은 개혁정책에 연유한 것인양 치부하며 개혁에 대한 총반격을 가하고 있다. 관료출신들로 구성된 대부분 경제각료들 역시 이른바 '허약체질론'을 들면서 우리 경제가 현재 몸이 허약한 환자와 같으니 수술을 미루고 체력이 보강될 때까지 개혁의 속도조절이 중요하다는 대증요법을 주장하였다. 즉 시장체력이 쇠약하니 재벌들의 불-탈법 행위를 적발하는 내부자거래 조사나 분식회계에 대한 감사 등을 실물경기가 활성화되고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이미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는 덮고 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가 수십년간을 한 솥 밥을 먹어온 국내투자가들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외국인투자가들에게 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에게는 반면교사가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투명하다고 인정받는 자본시장인 미국에서 2001년 10월말에 미국 7위의 거대기업인 엔론사가 15억달러의 분식회계를 통한 회계부정사건이 터졌을 때 미 정부당국은 이른바 사과상자안의 썩은 사과 한개의 비유를 들며 방치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2002년 8월 1930년대 이후 가장 강력한 기업개혁법안인 사베인즈-옥슬리법이 입법될 때까지 금융시장에 엄청난 신뢰의 위기를 가져와 투자자들이 외면하여 주가가 폭락하고 연쇄적으로 기업불신을 초래하여 채권시장을 교란하였다. 결국 자본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도 분식회계로 인한 대기업 부정사건은 대증적 요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하나의 썩은 사과사건이 아니고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파먹는 바이러스성 질병과도 같은 무서운 시장성 전염병인 것이다. 이제라도 금융당국은 돼지구제역 사건이 났을 때처럼 감염된 돼지와 감염 안된 돼지를 빨리 격리하고 차단하는 강력한 시장감독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번 분식회계 사건으로 우리 기업들의 대부분을 못 믿겠다는 것이고 여차하면 투자한 돈도 회수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재계의 불안과 불만을 위무하는 것은 좋으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은 말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재계나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개혁은 파괴가 아니다. 개혁은 정확한 현실진단을 통해 잘못되었거나 잘못될 가능성이 높은 제도나 운용을 바로잡아 미래에 한꺼번에 터질 수 있는 대형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상시 구조조정으로 보아야 한다. 상시라는 것은 속도조절의 대상이 아니다.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장부상에 있어야 할 1조원이 넘는 부채가 없어졌는데도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눈감아 주고 그것을 다시 인정하는 금융감독당국이 버젓이 존재하는 나라가 어떻게 동북아 금융중심국가가 된다는 말인가. 權泳俊 (경희대 경영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3. 1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