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 `盧신념`에 성패
2003-02-26
여성정책 `盧신념`에 성패 여성의 삶이 본격적으로 국가 정책의 대상이 된 것은 전두환 독재정권에서부터 였다. 전두환 독재정권이 들어서던 해인 1980년 코펜하겐에서 세계여성대회가 열렸고, 이 대회에서 유엔은 각 나라가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채택하도록 강력히 권고했다. 전두환 독재정권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여성대회에 참여했던 대표단을 중심으로 여성들을 대거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영입했고, 한국여성개발원과 정무장관 제2실 등의 기구를 만들었다. 그 후 노태우·김영삼 정권에서도 고용평등, 보육 등 여성 관련 쟁점이 국가 정책의 대상으로 됐으며 여성발전기본법 등의 법률이 제정됐고 상당한 예산이 투입됐다. 그러나 여성정책은 국민의 정부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입안되고 시행됐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와 이를 이은 여성부가 여성정책을 다루는 정부 기구로 신설됐고, 6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을 두었으며, 성희롱·가정폭력·성폭력 등의 문제가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가 됐다. 또한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됐고, 고위직에 여성이 적극 임용됐으며, 모성보호 관련 법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 밖에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전국구 후보에 여성을 남성과 번갈아 순번을 배정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경선제 도입으로 고전하는 여성 정치인들이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적극 후원했다. 이에 앞서 야당 당수 시절에는 가족법이 개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 정부 집권 기간에 여성 정책이 진일보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운동에 헌신한 여성운동가들과 정치인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김대중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과 지지가 그 기반이 됐음을 여성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 동안 여성들은 김대중 대통령이라면 여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우선순위에서 결코 뒤로 미루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정치가나 공무원들도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확고히 지지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새로운 여성정책을 반대하지 못했고, 오히려 여성들을 적극 지원했으며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스스로 마련했다. 여성들은 정치가들이 여성 정책에 대해 여러 가지 공약을 내세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인드(mind)라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나열하는 여성 관련 공약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선거 참모들이 마련한 것으로서, 경제정책이나 통일 문제 등 이른바 핵심 현안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간주되는 현실에서 정치가들이 이를 과연 진지하게 검토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러한 공약보다는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여성들이 사회나 가정에서 겪는 차별과 소외를 얼마만큼 이해하는지를 더 가늠해보고 실제로 여성들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해왔는지를 살피고 싶어 한다. 여성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쉬우나, 여성 차별은 법이나 제도만으로는 시정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사회에 문화적으로 깊숙이 배어 있다. 그리고 여성 차별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이를 시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 여러 부처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차별받는 소외 계층에 대해 오랜 동안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 차별 받는 ‘하늘의 절반’인 여성에 대한 관심 또한 적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선거 기간에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고 “아이를 낳으십시오, 노무현이가 키워 드리겠습니다”라는 보육에 관한 약속을 확신에 차서 설파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러나 혹시 이는 선거공약일 뿐, 전형적인 경상도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지나 않은지 한편에서는 걱정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정책은 법적·제도적 기반을 일부 마련했을 뿐이다. 양성(兩性)이 진정으로 함께 조화롭고 평등하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정부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여성들은 뒤에서 받쳐 주고 지지해 주었던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도 결코 그에 못지 않게 여성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경애 (동덕여대 여성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2.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