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北·美타협 주도해야
	2003-01-13
南, 北·美타협 주도해야 북한과 미국의 팽팽한 기싸움이 합리적인 예상과 달리 북한이 공세를 펼치는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이 자신의 국력보다 100배 이상 강한 미국에 사생결단의 각오로 도전하면서 강압 전략을 구사해 온 부시행정부가 대화를 고려하고 체제 보장을 시사하는 등 외교적 수세에 몰리고 있다. 미국 강경책의 논리적 기반인 힘의 우위와 무력 제재 가능성이 한반도에서 사실상 작동하기 어려운 점이 드러나고, 부시행정부의 당면 과제가 세계 에너지 시장 장악을 위한 이라크 정권 교체이기 때문에 북한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억제하려 한다. 또 북한이 핵개발을 재개하면서도 꾸준히 미국과의 대화 의사를 표명해왔을 뿐 아니라,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주변 강대국 및 세계 여론 역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지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련의 긴장 고조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해온 이유가 비록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방식이 반인도적인 대량살상무기 개발인데다 초강대국 미국의 사활적 국익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하는 동시에 한민족 전체의 안위를 담보로 하고 있어 적절한 해결책이 시급히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현 사태가 1993~94년의 위기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몇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먼저 현재 대북 포용 지지자 클린턴 대신 대북 강경 노선의 부시정부가 들어서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당시와 달리 대북 협상 채널을 갖고 있다. 또한 일본이 관련국임을 주장하고 있고, 러시아가 북한 및 미국과 우호관계를 회복하여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유의할 점은 당시처럼 현 위기가 북·미간 양자 대립으로 고조될 경우, 미국은 최후 수단으로 무력 제재를 고려하게 될 것이고,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큰 우리가 결국 해결 비용을 과다하게 부담할 개연성이 짙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유 제공만을 맡으면서도 평화해결사가 된 반면, 우리는 우리 운명 전개 과정을 객석에서 관전하면서 경수로 건설 비용의 70%를 부담하게 됐다. 현재 북·미 양측은 체면 손상없이 양보를 행하기가 몹시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해 왔다. 미국은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에 관한 가시적이고 검증가능한 조치가 있어야 대화에 임한다는 입장에서 핵개발 포기 선언만 있으면 대화를 개시할 수 있다는 선으로 입장을 완화했다. 그러나 미국이 일체의 대가를 배제하고 있고 의제를 북한의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 이행 방법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북한은 오히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 시사로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활용, 지금의 갈등 구도를 타개해 나가야 한다. 또한 현명하게 대처하면 사태 해결 과정을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북·미 대립으로 약화된 한국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기회로 선용할 수도 있다. 먼저, 경협 사업을 통해 얻은 대북 협상력과 주변국들이 북한의 핵무장과 미국의 대북 제재에 반대한다는 점을 활용, 남·북·미 3자 해결 방식과 함께 주변국들도 참여하는 다자적인 해결 방식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현 위기는 북한의 검증 가능한 핵포기를 대가로 북한에 체제 보장을 제공하면 타개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조약으로 보장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므로 북·미 양측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러시아 같은 중재자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 양측의 위신을 살려주는 남·북·미 대타협으로 핵 위기를 해결하면서 일본이 북·일 수교의 대금을 치르는 것이 최선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제3의 중재자를 활용하는 한편 북한과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포괄적인 타협안을 은밀히 제시해야 한다. 특히 이 타협안 가운데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와 부시정부가 주장해 온 북한의 군축문제를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는 선에서의 주한 미군 일부 감축과 연계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한반도 안보가 북·미 간에 논의돼 온 비정상적인 구도를 시정하고 남북 군사회담을 실질적인 한반도 평화협상 창구로 격상시킬 수 있다. 즉, 우리가 남북 관계의 실질적인 주역이 되고 보다 수평적인 대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출처 - 문화일보 2003. 1. 13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