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사기극

지난 4월4일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실린 ‘일본인 다니 순세이(谷俊成·71)가 고려청자의 신비를 풀었다’는 박스 기사는 어처구니 없는 희대의 사기극이었지만 언론과 사회, 일본의 우월주의 사상과 우리나라의 자세 등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하였다고 본다. 다니 순세이는 그 기사에서 자신이 1960년대 초반부터 고려청자를 복원하기 위해 애썼으며 한국 정부로부터 고려청자를 복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특수 금속질 광물을 발견하여 비색을 완성하고 한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왕실사용의 청자태토를 발견하여 드디어 고려청자의 복제에 성공하였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은 일본의 기업가이며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도자기를 연구해 모종의 학위를 받았으며 외국에서 고려청자 복원 재생으로 큰 인증과 포상을 받았다고도 하였다.

이 기사는 삼척동자가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사기극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소에 부치고 말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신문은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기사의 당위성을 고집하여 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 기사가 게재되자 경기 이천의 원로 청자 복원작가인 방철주(方澈柱)옹이 필자에게 수차례 전화와 팩스로 사정을 알려주면서 이 신문이 조그마하게나마 정정이나 사과의 기사를 써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동안 방옹은 니혼게이자이신문 본사와 서울 지사에 여러 차례 서신도 보내고 전화도 하면서 본인에게도 여기에 동참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고려청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실 우리 문화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단절의 아픔을 맛보았다. 각 분야에서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노력중의 하나가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질과 아름다움을 재현해서 그 정신을 살려보자는 것이었다. 청자 재현의 대표주자는 해강 유근형 선생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집념의 연구와 노력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이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햇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다니 순세이는 그 각고의 노력과 고통에서 얻어진 보람을 송두리째 앗아다가 자기 자신의 업적으로 돌려놓으려 하였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무리 실수라도 잠재 의식 속에 숨어있는 일본의 그릇된 우월주의를 은근히 뒷받침해준 것이다.

필자는 방옹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여러 가지를 고증해 보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완곡한 서한을 보낸 바 있다. 그 서한에는 질타도 없었고 단지 그 신문의 권위와 인기와 양식에 맡겨 잘못된 기사에 대한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아니하고 8개월을 넘겼을 뿐 아니라 다니 순세이는 더욱 기세를 높여 서구와 일본에서 크게 칭송받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고 하니 언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책임이 참으로 크다는 것이 새삼 입증되었다고 하겠다.

지금 너무 늦었지만 이천 등지의 전승도자기 작가 여러분이 분개하여 뜻을 모아 다니 순세이의 사기행각을 거론, 규탄하자 다니가 이천에 와서 사과했다 하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사과문을 게재했다고 일본 도쿄신문이 대서특필하였다 한다. 그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니 순세이,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잘못 뿌린 씨앗을 거두어 들이기에는 너무나 미흡하기 그지 없다. 잘못된 씨앗을 마구 뿌려 퍼지기는 쉬워도 그 씨앗을 거두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에 사기극이 벌어졌을 때 너무 안타까워 방옹을 도와 여러 곳에 호소했지만 그 반응이 미온적이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나라가 어지럽고 정치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니 이 정도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문화는 우리의 자존심이고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해줄 원동력이다.       

<정양모·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출처 - 2000. 11. 28 경향신문 칼럼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