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개혁의 방향
	2002-12-05
국정원 개혁의 방향 정보기관의 개혁문제가 지난 92, 97년에 이어 또다시 대선정국의 뜨거운 쟁점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여야 후보 모두 국가정보원의 대수술을 공약화하고 있어서 누가 당선되든 국정원의 변화는 이제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이회창 대통령후보는 작금 불거진 도청의혹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간여를 금지하고 국회와 감사원을 통한 견제장치 강화를 밝혔다. 그래서 국정원법을 개정, 불법도청이나 정치사찰 행위를 엄격히 규제하고 본연의 대공수사와 해외정보 수집 임무에 충실케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는 국정원을 아예 해외정보처로 개편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이제 어떠한 형태든 국정원의 국내 기능은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여기서 논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국가정보기관의 절대적 필요성은 인정하되 단지 그 역할과 기능을 상대적으로 감시하고 조정해야 한다면 적어도 다음의 3가지 방향에서 문제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정책의 기본원칙에 관한 것이다. 즉, 정보기관이 국가 경영전략상 차지하는 위치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를 처음부터 명확히해야 한다.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구인 관계로 오직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정치적 의지만 받드는 충성집단으로서 이른바 ‘정부 안의 정부’ 역할을 자임하게 만들어 왔던 것이 작금 우리의 현실이다. 국정원은 대통령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고 또 반대로 순수한 정보기관도 될 수 있는 만큼 무엇보다도 통치권자의 결단이 중요하다. 따라서 차기 정부 준비팀들은 이 대원칙에 입각, 국정원법 개정과 감사원 기능 확대, 그리고 국회 정보위 활동 강화 등을 한 데 묶은 견제와 균형의 청사진을 국민 앞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정원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기 이전에 먼저 테러방지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기관의 전문영역을 구축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둘째, 제도적 측면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요구된다. 정보기관은 임무의 특수성상 수시로 내부 구조를 늘이거나 줄일 수 있고 기능도 얼마든지 자체 조정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치권자의 기호에 따라 정보 활동 우선순위가 바뀌거나 지휘·명령·통신(C³) 임무가 중복 혹은 분리되는 혼선이 빚어지곤 했다. 현정부 들어와서 대공수사 기능이 유명무실해지고 오히려 ‘국내보안활동’만 강화된 이상현상이 생긴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지금까지는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정보기관 고유의 특성을 무시한 정치적 인사 개입과 전횡 등으로 오히려 개혁이 후퇴한 점이 없지 않았다. 한마디로 기본임무와 기능의 전문화가 곧 구조조정 및 내실화 작업의 바로미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보기관은 음지에서 첨예한 정보전을 수행하는 안보기관이지 결코 양지에서 공개리에 국정을 담당하는 정책부서가 돼서는 안 된다. 이 점이 분명치 않으니 국정원 간부들이 대형 부정부패 사건에 잇따라 연루돼 내분이 일어나는가 하면 국정원장이 나서서 대북정책을 홍보하는 잘못된 관행이 생긴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 위협 등 고도로 불확실한 안보정세가 지속되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대공전선을 지키는 국정원의 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가장 기본적인 국가보위의 임무에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차기 대통령은 철저하게 감독하고 또 그만큼 용기와 사명의식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중앙정보부(CIA)와 독일의 정보부(BND)같은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들의 일차적 임무는 최고 통치권자의 정치철학을 실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대외정책을 정보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견제하는 보완적 기능의 발휘에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정책 주도 역할이 아니라 전략정보 서비스 기능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원 기능이며 바로 이것의 효율화가 정보를 국력화시키는 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금은 국정원이 국민적 합의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근본적으로 특수기관의 개혁 책임은 기관 자체에도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내규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전면 개편하여 국가 위기관리 기관으로서 정예적 면모를 갖추기를 기대한다. 남주홍 (경기대 국제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12. 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