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정치 선전 싫어한다
	2002-12-02
독자는 정치 선전 싫어한다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전에 돌입한 지난주 중앙일보의 1면에는 줄곧 대통령 후보의 소식이 등장했다. 미디어는 5년간 국정을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의 중요한 장(場)으로서 후보와 유권자 모두에게 실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중앙일보는 그런 점에서 선거 보도가 갖춰야 할 제1의 조건, 즉 객관적 보도를 원만히 수행해 왔다. 특히 각 후보의 정책을 꾸준히 일목요연하게 비교 설명해, TV 토론에 식상한 유권자에게 좋은 자료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대표적 일간지인 중앙일보에 거는 기대가 그 이상이기 때문인 모양이다. 선거 보도에서 객관성의 확보는 이리저리 고심해도 불가피하게 아쉬움이 남게 되는 부분이다. 후보 단일화는 분명 이번 선거전의 구도를 바꾸어놓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복적 보도는 선거를 목전에 둔 시기에 매우 치명적인 객관성 침해 사례가 될 수 있다. 특히 그 내용이 후보 단일화 이후의 연합형성 양태를 설명하기보다는 승리한 후보 진영의 기쁨에 찬 모습을 전하는 것으로 일관해, 특정 후보에게 정치 선전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선거 보도에서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 사후 처방식 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선거 과정에서 여론조사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그 영향력과 신뢰도는 서로 다른 문제다. 여론조사가 갖는 문제점은 두 차례(25일자 사설, 26일자 5면) 보도됐으나 뒤늦은 감이 있다. 더욱이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 단일화가 성사된 이후에 심각하게 이 문제를 지적한 것은 문제의 중요성 자체를 의심했던 것인지, 아니면 양 후보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와 지지하는 후보가 엇갈리게 나타난 여론조사 보도(27일자 1.8면)도 아쉬웠다. 다음날 '당선 가능성'과 '지지율'의 차이에 대한 독자들의 문의가 잇따르자 설명 기사(28일자 8면)를 실었지만 애초부터 각각의 산출 방식 및 차이를 상세히 소개했어야 했다. 후보 간 균형과 객관성이 강조되는 선거 보도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언론의 문제 제기 기능이다. 아직 제대로 된 선거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신문은 잘잘못을 짚어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보도의 대부분이 양 진영 분위기와 상호 비방 내용을 그대로 따옴표 안에 옮겨 적는 데 그쳤다. 후보 단일화 과정의 정당성,상호 비방과 네거티브 선거의 심화, 철새 정치인, 정책보다는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하고 있는 후보 등의 사안을 엄정히 지적해 경종을 울렸어야 했다. 우리의 정치 수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유권자는 정치인보다 신문을 믿는다. 정당대표의 상대방 진영에 대한 욕설과 꽃다발을 든 철새 의원의 사진은 차라리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현실이 움직여 주지 않을 때 문지기로서의 언론이 그 힘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미디어의 등쌀 때문에라도' 정치인들이 변화하게 할 수는 없을까. 신문의 선거 보도는 후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위한 것이 돼야 한다. 앞으로 대선까지 17일 남았다. 이 기간에 중앙일보는 후보들의 선전과 공방의 장이 아니라 유권자들을 보다 현명한 판단으로 이끌어 주는 미디어가 돼 냉철한 선거보도를 해주길 기대한다. 郭眞英 건국대 교수·정치학 출처 - 중앙일보 2002. 12. 2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