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선율에 파리의 가을이 젖었다
2002-11-22
국악선율에 파리의 가을이 젖었다 9월 개막된 프랑스의 ‘파리가을축제’가 11월16일 파리 근교의 고도(古都) 생제르맹앙레에서 열린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 2002 문화페스티벌’의 국립국악원 연주단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아주 특별한 감동으로 가을축제 개막공연 현장을 지켜 본 필자는 비록 공무를 위해 개막공연이 끝나자마자 귀국해야 했지만, 지난 2개월간 매일 파리에서 날아온 ‘국악 통신’에 즐겁게 귀를 기울이며 지냈다. 올해로 31회를 맞는 ‘파리가을축제(Festival d’Automne `a Paris)’는 매년 9월 하순에 개막해 연말까지 3개월 동안 개최되는데, 수준 높은 공연 기획과 다채로운 내용으로 15만명의 유료관객을 이끌어내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그동안 간간이 우리 전통공연이 초청된 적은 있지만, 올해는 ‘한국의 달’이 지정돼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당초 일부에서는 한국이 그동안 주빈국으로 초청된 일본, 중국, 이집트 등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립국악원의 개막 공연이 매진되고, 주요 일간지의 호의적인 보도가 계속되면서 프랑스 청중들의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축제에서는 국립국악원 공연 외에 사물놀이, 판소리, 은율 탈춤, 하회별신굿 탈놀이, 대동굿과 같은 한국의 다양한 전통예술 공연과 시 낭송회, 현대음악 연주회, 영화제 등의 문화행사가 열렸다. 개막공연에는 장 자크 알랴공 프랑스 문화공보부 장관,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과 박문석 문화관광부 차관 등 양국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춘앵전(春鶯쫚), 포구락(抛毬樂), 살풀이, 태평무 등이 “정중동(靜中動)의 아름다움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며 격찬 받았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신명나는 가락은 한국인의 역동적이면서도 흥겨운 감성을 만방에 떨쳤다. 안숙선, 김수연 등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와 황해도 굿의 대가 김금화가 펼친 대동굿도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영혼을 사로잡았다”는 뜨거운 찬사를 얻었다. 11월16일의 폐막공연은 궁중음악과 정악, 민속춤 등 국립국악원의 정통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문화적 호기심이 많은 프랑스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일부 공연은 파리 외에 루앙, 브레스트, 낭트 등의 지방 순회공연으로 연계되어 프랑스 전역에 한국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축제에 참가한 판소리 작품이 영국의 2003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되는가 하면, 김금화의 대동굿 공연은 미국 링컨센터로부터 출연 섭외를 받는 등의 낭보도 들려왔다. 세계적인 축제를 통한 한국문화의 가능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유구한 역사와 함께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생성·발전되어 온 전통문화는 이제 한국만의 것이 아닌 세계인의 공통유산이 되었다. 앞으로도 세계인의 가슴에 문화한국의 이미지를 깊이 새기기 위해 정부와 민간부문 모두가 지구촌 곳곳을 대상으로 문화교류를 폭넓고 지속적으로 펼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미용 (국립국악원장) 출처 - 동아일보 2002. 11. 22 여론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