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상품화는 안된다
	2002-11-20
대학의 상품화는 안된다 수능이 끝나면서 본격적인 대학입시가 시작됐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학생이나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만이 아니다. 대학 역시 '일년 농사'의 모든 것을 신입생 모집에 걸고 있다. 물론 대학 간에 빈부의 차이는 뚜렷이 존재한다. 일부 배부른 대학은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분주한 반면, 대다수 어려운 대학은 그저 정원이라도 채우기 위해 바쁜 모습이다. 치열한 학생 유치 전쟁에 서울대까지 가담했다고 하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격세지감의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대학광고의 홍수도 예전엔 없었던 일이다. 신문에 대학의 신입생 모집 광고가 실리는 것은 이제 예사로운 일이 돼버렸다. 대학이 일간지에 전면(全面) 광고를 낸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다. 하기야 최근에는 텔레비전 주말 연속극에 대학이 광고주로 나선 경우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대학광고가 입시철에만 반짝하는 것도 아니다. 교수 채용 공고를 비롯해 각종 대학원생 모집 광고, 그리고 일반인 대상의 평생교육원 안내까지 포함하면 대학의 신문광고는 가위 연중무휴다. 청소년이나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일부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수많은 대학들이 스폰서가 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광고에 목 맨 학생유치戰 이것만이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고개만 들면 대학 광고물이다. 전국의 기차역이나 고속 터미널 또한 행선지 소재 대학 광고들로 늘 만원이다. 이때 많은 경우 인기 연예인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데 (학교에 얼마나 자주 가는지는 모르지만) 대개 그 대학 재학생이라 한다. 하지만 총장이나 교수들이 간판 인물로 나서는 일도 드물지 않고, 그 대학 출신 아나운서나 운동선수가 모교의 신입생 모집을 위해 얼굴을 빌려주는 일도 낯설지 않다. 학생 유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이 대학의 요즘 분위기다. 그런데 대학 광고가 비록 양적으로는 크게 늘어났지만 정보의 내용과 질의 측면에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의 대학 광고가 천편일률적이어서, 예컨대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정보화를 주도하고 세계화를 선도하며 또한 특성화를 지향한다고 자랑한다. 수십 년 전 국내 대학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민족의 대학'을 표방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실로 엄청나게 잽싼 변신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요즘 웬만한 대학 치고 이른바 각종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을 자임하지 않는 곳도 없다. 최적의 교육환경, 최선의 취업 지도, 최고의 학생복지 등 화려한 광고 문안만 읽다보면 우리 나라 대학은 전 세계가 부러워할 학생들의 천국 같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 대학들이 이처럼 '유사 광고'를 통해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은 다분히 '과대 광고'의 공통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대학의 질적 수준을 광고만 갖고 평가하다가는 큰코 다친다. 옷 갈아입는다고 때가 사라질 리 없고, 화장 고친다고 얼굴이 달라질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연간 수억원에서부터 수십억원에 이른다는 예산을 광고와 홍보에 '낭비'하고 있는 대학의 현실은 실로 개탄스럽다. 가뜩이나 교육재정이 모자라는데 그런 거액은 마땅히 학습여건을 개선하거나 장학 규모를 늘리는 데 사용돼야 한다. 더욱이 아무리 '만물의 상품화' 시대라고 해도 교육의 경우는 다르고 또한 달라야 한다. 대학이라고 해서 마냥 성(聖)스러운 영역에 머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속(俗)된 세상에 마구 영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상업화와 대학의 상품화를 자초하는 최근의 대학광고 범람 추세는 대학 스스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광고비용이 학교 예산의 일정 부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도 검토할 법하다. 비용 집행 상한선 만들길 이런 조처가 더욱 더 절실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취업과 방학을 앞둔 이맘 때 대학 구내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인력회사'의 구인광고 때문이다. 대학에 와서 공사판이나 작업장의 막노동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일용 잡부로 일해 학비를 벌거나 생계를 꾸려야 할 대학생이 전국적으로 결코 적지 않은 마당에 대학들이 엄청나게 큰돈을 광고비로 쓴다는 것은 여간 강심장이 아니다. 미증유의 고실업 시대를 맞아 창 밖은 벌써 엄동설한인데 말이다. 全相仁 (한림대 사회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2. 11. 2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