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단일화와 民主主義
	2002-11-12
후보단일화와 民主主義 노무현-정몽준 후보간의 후보 단일화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의 여론 지지도를 볼 때 3자간 경쟁 구도에서 두 후보 모두 단독으로는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앞서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 쟁취가 정치인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양측의 이러한 후보 단일화 시도는 일견 수긍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각은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단일화 협상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원칙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명이 제시돼야 할 것 같다. 첫째는 단일화를 통한 대선 승리가 민주당이나 국민통합21 양측의 관계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모르지만, 사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왜 단일화를 해야 하는지 그 명분이나 정당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두 후보는 정치적으로 매우 상이한 특성을 갖는다. 노무현 후보는 노동운동을 지원해 온 변호사 출신이고 정몽준 후보는 재벌가 출신이라는 배경뿐만 아니라, 이미 후보 토론회 등에서 밝혀진 대로 정치 이념이나 정책 성향에 있어서도 작지 않은 차이가 두 후보간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집권 후 추진할 정책 방향에 대한 차이가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정치적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로 반(反)이회창 연대가 꼭 필요한 것인지 잘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 이회창 후보가 집권해서는 안되는지, 혹은 단일화된 후보가 승리한다면 국민들에게 어떤 점에서 보다 나은 정책적 혜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주어지지 못한다면 단일화 논의는 국민들과 유리된 채 정치권 내에서 이뤄지는 또 다른 정계 재편 논의에 그치고 말 것이다. 누가 집권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주목한다면 무엇을 위해 집권하려 하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후보 단일화를 위해 또다시 별도의 후보 선출 절차를 가져야 한다면 금년 초 국민참여경선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답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참여경선은 자발적 당원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 정당의 현실을 감안해 일반 국민을 후보 결정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선출된 후보의 정통성을 높이고 지지 기반을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당선된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당원과 일반 지지자들의 의사를 대표하는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후보가 되었으며, 그동안 계속된 민주당의 당내 분규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를 지켜준 것도 바로 이러한 정통성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의 공식 후보가 되었다는 것은 소속 정당을 대표하는 후보자로 대선 경쟁에 나가는 것에 대해 당 구성원과 지지자의 위임(mandate)을 받은 것이지만 한 후보의 사퇴를 전제로 하는 후보 단일화에 대한 권한까지 위임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절차상의 차이는 있지만 정몽준 후보 역시 국민통합21의 대선 후보로 임명된 만큼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만일 두 후보 가운데 한 후보가 단일화의 결과로 사퇴하게 되면, 특히 일반 국민의 참여까지 허용했던 민주당의 경우에는 요란을 떨었던 당내 후보 선출 절차가 결과적으로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후보 단일화가 추진되는 것은 그만큼 이들 두 후보 진영의 위기의식이 크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적인 절박함에 대해서 이해하면서도 많은 유권자들은 이러한 인위적인 후보 단일화 시도에 대해 착잡한 심정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적 경쟁은 권력을 향한 다툼이지만, 민주적 경쟁에서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은 명분과 설득력이라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2. 11. 1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