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후보 평가와 대선 보도
2002-10-11
언론의 후보 평가와 대선 보도 대선 주자들의 발걸음이 부쩍 빨라지고,국민들의 관심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언론도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이나 국민,언론 모두 대통령 선거를 그릇된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의 관점은 하나같이 ‘과연 누가 대통령에 뽑힐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정치인들이야 그러려니 해도 국민이나 언론까지 그런 관점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거는 후보들,특히 대통령 당선자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좋은 공복을 뽑기 위한 ‘유권자의 잔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은 자신이 주권자이며,자신이 대통령을 뽑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선거는 누군가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절차가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주권행사인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 지녀야 될 올바른 관점은 ‘좋은 대통령’을 뽑기 위해 ‘유권자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선거정보를 공정하게 전달하고,건전한 선거여론을 조성해야 할 언론의 관점도 잘못됐다. 후보 따라잡기식 중계보도나 유세보도 태도에서 벗어나 유권자의 선택에 유용한 정보의 공정한 제공에 힘써야 한다. ‘경마식 보도’에 대한 자성의 움직임이 있지만 ‘누가 누가 잘하나’ 식의 인기도 순위에 매달리거나 후보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적 동정까지 경쟁적으로 다루는 태도는 여전하다． 선거국면에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선거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우쳐주고,후보의 자질 능력 도덕성 등을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시시콜콜 흥미 위주의 가십성 기사는 다루지 말고,선거를 정책대결로 이끌어가야 한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후보들이 입으로는 정책대결을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세몰이나 지역감정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의 철학이나 비전,정책보다는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좋은 이미지 전달에 더 신경을 쓴다. 언론보도가 그렇게 꾸며진 이미지의 전달에만 충실해서는 안 된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말도 있듯이 선거공약은 대체로 잘 지켜지지 않았고 유권자도 별로 기대를 걸지 않는다． 정책대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또 다시 지역주의나 색깔론 등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선거를 정책대결로 만들 수 있을까. 일단 신상발언이나 덕담 수준,또는 막연하게 잘 해보겠다는 식의 발언은 무시해야 한다. 정책과 공약도 그대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 비슷비슷하고 언뜻 보아서는 유권자를 설레게 만들 장밋빛 일색인 공약을 그대로 보도하는 건 오히려 무책임한 태도이다. 후보 발언 내용의 진실성을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의제를 설정하고,그런 관점에서 보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확신에 찬 어조로 그럴 듯한 약속을 마구 하는 후보가 좋은 평가를 받을 위험성도 있다． 따라서 공약과 정책이 과연 임기 안에 실천 가능한가,우선 순위를 따져볼 때 정말로 필요한가,필요한 예산은 확보할 수 있는가,다른 정책과 서로 충돌하지는 않는가,그 정책을 집행할 때 문제점들이 빚어지지는 않는지,그리고 그 문제는 극복할 수 있는가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또 후보들이 인터뷰나 각종 강연,TV 토론 등에서 한 말들 사이에 서로 상충되는 것은 없는가도 언론이 검증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대선 후보 인터뷰에서 특히 언론이 주의해야 할 점은 유권자의 관점에서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질문을 해야 그 답변을 통해 유권자가 후보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적 관심사를 어떻게 의제로 전환시킬까 고민해야 한다. 또 언론이 유의해야 할 점은 상대후보 깎아 내리기의 정치공방에 말려 들어가는 일이다. 특정후보에 대해서는 호의적이고 다른 후보에게는 비우호적이어도 안 된다. 공정한 보도태도가 중요하다． 또 지난날 언론의 대선 관련 보도는 선거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투표참여에 동기를 부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거 운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양상을 지나치게 강조해 정치허무주의와 정치무관심을 강화시켰다. 올해의 대선에서는 이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성공회대 연구교수) 출처 - 국민일보 2002. 10. 10